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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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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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공생활의 주요 무대는 갈릴래아 지방이었고, 그 중심 도시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 회당에 들어가셔서 어느 안식일에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말씀 한마디에 도망친 악령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22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그들의 율법에 대한 해설과 가르침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같은 율법 학자들의 권위는 점점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내용에 비추어보면,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통해 삶과 신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은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율법 규정을 의무로 부과하여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였습니다. 그런 율법학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사람들은 놀라운 권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때,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은 더욱 놀랐고,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27절)하며 감탄하였습니다.



권위는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마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에서 권위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성경 희랍어 ‘권위(엑수시아)’의 어원적 의미는 ‘존재로부터’라고 합니다. 권위는 존재로부터, 즉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느껴지는 권위는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말씀 그대로를 이루고, 말씀대로 살아가신 분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그 나라의 현실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적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병자 치유와 악령을 쫓아내는 구마, 죄인들에 대한 용서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 등의 행동으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를 이루고 살아가신 분

물론 한마디 말로 병을 고치거나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것은 분명히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달리 가르치신 대로 사셨고 또한 사셨던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행적에는 참으로 놀랍고 힘찬 권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스승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들 역시 언행이 일치하는 존재로 거듭 변화되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예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수님과 깊이 있는 만남을 통해 우리가 먼저 복음화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 여정에 동행하시며 필요한 도움의 은총을 선물하시니 힘을 내도록 합시다.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사람들은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될 때 공허한 말들만 무성한 오늘의 세상은 다시 한 번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라며 반색할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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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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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 11장 17절
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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