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꿈CUM 수필 (5)
전 세계 사람들을 살펴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신조어 감각이 뛰어난 국민은 많지 않을 듯싶다. 걸핏하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그때그때의 현상과 유행과 감정 상태 등을 반영하여 나타나는 신조어들은 새롭다 못해 눈부시도록 어지럽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신조어 능력은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꼰대와 라떼란 말도 그렇다. 실은 꼰대란 말은 이미 인터넷의 지식백과에도 설명이 나오는 말이니 그렇게 새로운 느낌의 말도 아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해온 용어이지 싶다. 우리가 아는 대로 꼰대란 말은 권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어른들을 가리켜 젊은이들이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라떼란 말은 그 쓰임이나 색깔이 조금 다르지 싶다. 본뜻은 커피나 차 종류에 우유를 적당량 섞어서 만든 음료수를 말한다. 마시기 부드럽고 새로워 젊은 이들이 주로 좋아하는 음료수이다. 그런데 요즘 이 좋은 음료수를 젊은이들이 싫어하게 되었단다. 이유는 어른들의 말투에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을 향해 어른들이 ‘나 때는 말이야’ 식으로 훈계를 자주 해서 그게 싫은데 이 말투의 앞부분에 나오는 ‘나 때’가 음료수의 ‘라떼’로 들려 라떼까지 싫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속사정이다. 그러니까 말의 뜻이 바뀐 것이고 두 겹이 된 것이다. 이래저래 나이 든 사람, 어른들은 설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세상 이다.
이 두 가지 말을 두고 내 생각은 이렇다. 어른과 젊은이들 쌍방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생각해주면 어떨까.
어른들 쪽에서 먼저 무조건 권위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쪽으로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 편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 편에서도 그렇다. 나이 든 세대들을 꼰대라고 라떼라고 몰아세우지만 말고 지나간 세대 사람들의 말이나 삶을 이해하고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될 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세대 갈등이란 것도 조금씩 좋아지는 쪽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꼰대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자기 생각과 기준을 정하면 좀처럼 그것을 바꾸지 않는 고집스러운 젊은이들 말이다. 언제든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변화에는 진보와 퇴보가 있는데 이런 경우 퇴보가 되기에 십상이다.
늙은 꼰대는 10년, 20년 가는데 젊은 꼰대는 60년, 70년 가기에 더욱 큰 문제다.
글 _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현재 공주에 거주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첫 시집 「대숲 아래서」 이후 문학 서적 100여권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