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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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탄생

[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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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안드레아 돈 두치(Mastelletta, Giovanni Andrea Donducci, 1575~1655)의 ‘모세의 발견’(Il ritrovamento di Mose), 1618,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텐세 미술관.


이집트 파라오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 1,16)

이른바 산아제한 조치이다. 이집트인들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질긴 유대인들의 인구 증가가 두려웠던 모양이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과는 달랐다. 자기네들끼리만 똘똘 뭉쳤다. 이집트 문명에 쉽게 동화 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과거의 명재상 요셉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똑똑한 민족이었다. 이런 민족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이집트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누구인가. 강제로 누른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런 민족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 모든 법에는 늘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후 아므람이라는 사람이 아내 요케벳에게서 예쁜 아기를 얻는다. 남자 아이였다. 파라오의 명령대로라면 이 아기도 죽어야 했다. 그러나 부부는 초롱초롱한 눈과, 해맑은 웃음을 가진 아기를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3개월 동안 아기를 숨겨 키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 때문에 숨겨 키우는 게 힘들어진 것이다. 아기가 언제 끌려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결국 부부는 고민 끝에 왕골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눕힌 후, 나일강가 갈대숲에 버린다.(탈출 2,3 참조) 이제 아기의 운명은 하늘에 맡겨졌다. 여기서 ‘역청’(瀝靑)은 타르를 가열, 증류할 때 발생하는 끈적끈적한 검은색 물질로 아스팔트와 유사한,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재료였다. 바벨탑 및 노아의 방주를 만들 때도 사용한 것으로 보아(창세 11,3; 6,14 참조) 역청은 당시 중요한 방수용 재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청과 송진을 함께 왕골상자에 발랐다는 것은 그만큼 아기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남달랐음을 의미한다.

그 정성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강변을 거닐던 이집트 공주가 이 상자를 발견한다. 공주는 예쁜 아기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결국 아기는 우여곡절 끝에 공주의 손에 의해 이집트 궁중에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이 아기가 바로 ‘모세’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이다. 드라마 같은 모세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세는 어느 날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욱’하는 성질 때문에 살해했고, 결국 도망자가 된다. 히브리인으로서 이집트 왕궁에서 자란 모세가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후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피신하는데, 그곳에서 사제 이트로의 딸 치로라와 결혼,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그렇게 한동안 평온하게 지내던 모세에게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모세가 호렙산(오늘날의 시나이산)에서 장인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때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 불길 가운데서 음성이 들려왔다. 신과 인간이 직접 만나는 순간이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순명 대신 한발 물러선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모세의 말은 과장된 겸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모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는 우물쭈물하고 결단력이 없는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고집이 세고,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인내와 땀, 신뢰와 희망, 극기와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약점을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탈출기」 18장에는 동틀 무렵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판결을 내리는 모세의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모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모세는 열정적인 남자였다. 게다가 그 열정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있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는 때때로 위대한 인물 혹은 선택받은 인물의 카리스마 및 재능에 의해 거대한 도약을 이뤄낸다. 인류는 몇몇 위대한 철학자, 탐험가, 발명가, 시인 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의 편리함도, 높은 지적 수준의 향유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류의 비약적 도약을 가능케 한 인물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모세다. 모세는 단순히 한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인류는 그에 의해서 “아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인류에게 새로운 개념의 윤리의식을 심어준 것이 바로 모세다. 안식일의 개념, 즉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한다는 개념도 모세에 의해 파종됐다. 모세는 더 나아가 우상 숭배 등 오랜 세월 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관념을 극복, 획기적인 영적 진보를 이뤄냈다. 유일신 신앙을 재발견해낸 것이다. 모세는 당시까지 인류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했다. 유대인의 신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가거라.”(탈출 4,12) 이에 소명을 받은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집트로 향하는 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 그동안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과 함께 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가 이어집니다.


글 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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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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