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분도씨의 좌충우돌 항암투병기 (1)
나는 평소 병원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하는 편이다. 그랬던 나도 암이 발병하고 만 3년이 지나다 보니 종합병원만 벌써 세 번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비뇨기과 전문 병원에서 큰 병원(대학병원)에 의뢰하여,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암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위한 병원 선택을 위해 여러 지인의 조언을 들었다.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 되도록 최고의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최고 권위자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었다.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하고, 인터넷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들어 보았다.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를 치료 기간을 생각하면 간병을 도맡아야 하는 가족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지역의 대학병원 담당 의사가 해당 암에 대한 임상경험도 풍부하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집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여 입원과 수술을 결정하였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수술과 1년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치료 기간 동안 항암을 담당하는 종양내과와 수술을 담당한 비뇨기과를 왕복하며 치료 경과를 관찰하고 담당 의사들의 의견을 듣는 가운데 나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엔 외과 특히 비뇨기과는 인기가 낮아서 의과대학 내에서 해당 전공 지원자가 적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영화나 의학 드라마를 통해서 들어왔지만, 당시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가 수술을 받은 대학병원 비뇨기과 레지던트(전공의)는 당시에 단 1명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난히 바빴던 전공의 선생님을 회상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 힘든 와중에도 자상하게 찾아주고 치료를 해주던 전공의 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부디 훌륭한 의술로 많은 이들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멋진 전문의가 되었길 바란다.
그리고 6개월 후 정기 CT 촬영에서 복부와 가슴 부위에 전이된 암이 확인되었다. 항암을 재개하려고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담당 주치의가 위암 수술로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주치의는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을 것을 권하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본의 아니게 현대아산 서울병원에 진료를 예약하고 한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담당 의사를 만나 보았다. 담당 의사는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주고 다시 지역 대학병원으로 가서 계속 치료 받으라고 단 3분 만에 진료를 끝냈다.
서울에서 천안 집으로 내려오는 2시간 남짓의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낙담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진료를 요청하였다. 다행스럽게 여러 지인의 협력으로 지금까지 서울성모병원에서 2년째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3년 동안 크고 작은 병원을 여럿 거치면서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와 같이 사지가 멀쩡한 나이롱 환자들은 병실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한다. 보통 첫 번째 항암을 위해 입원한 첫날 병원의 모든 곳을 샅샅이 훑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비밀의 장소도 만들고 결국은 ‘나만의 최애(最愛) 장소’를 갖게 된다. 대개는 전망이 좋은 옥상이나 주차장 한편의 정원 같은 곳이다. 외래 진료가 끝난 시간에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책 한 권의 낭만도 즐길 수 있다. 대개의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는 곳곳에 회화나 조각 작품을 전시해서 환자들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돕고 있는데 작품들을 꼼꼼히 감상하는 것도 병원에서 누리는 호사 중 하나이다. 한가한 시간에 구내 커피숍에서 편안히 앉아 음악을 듣는 일이나, 병원 어딘가에 반드시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나만의 최애(最愛) 장소’중에서 가장 ‘최애(最愛)’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 서울성모병원을 꼽는다. 서울성모병원의 곳곳은 그야말로 나에게 있어서 병원의 신천지와도 같은 곳이다. 어느 병동에서나 사방 창으로 보이는 전망이 훌륭하다. 북쪽으로는 한강과 남산은 기본이고 멀리 북한산까지 볼 수 있어서 그야말로 ‘뷰의 끝판왕’이다. 남쪽으로는 대법원, 대검찰청을 비롯해 우면산과 예술의 전당,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던 관악산을 보면서 추억의 회상에 잠기곤 한다. 아침에는 잠실 쪽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저녁에는 여의도 쪽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밤마다 창가에 찾아오는 달님 별님 그리고 서울의 야경이 나와 같은 말기 암 환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주는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계속》
글 _ 김정수 (베네딕토, 천주교 대전교구 가톨릭농민회 부회장)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보다 농사를 택하여 지금까지 농촌에서 살고 있다. 2018년 요막관암 3.5기 진단받고, 수술 후 항암 4년차이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