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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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最愛) 장소는 이곳입니다.” (2)

[월간 꿈 CUM] 분도씨의 좌충우돌 항암투병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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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최애(最愛) 장소’인 서울성모병원에서 고르고 골라서 가장 ‘최애’(最愛)를 꼽으라 한다면 어느 곳일까?

본관 1층 로비 중앙에 서서 성당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중에 매달린 십자고상과 성모님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인지 나를 보고 계신 것인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본관 1층에서 5층까지 복도 어느 곳의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면 5층 유리천장으로 보이는 하늘이 나를 편안하게 감싸는 느낌을 받는다. 각 층마다의 벽에는 다양한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증을 받은 것들이다. 병원의 홍보나 의사들의 약력들만 즐비한 여느 병원과는 달리 이곳의 벽과 공간들을 감상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치유가 된다. 

입원을 해서 병동에 가면 아침, 저녁은 물론 매 시간마다 보는 풍경이 참으로 좋다. 대개는 한강과 남산을 볼 수 있는 북쪽의 병실을 선호하지만, 나는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고 밤마다 찾아오는 달님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남쪽 병실을 더 좋아한다.

본관 건물 6층에는 하늘공원이라는 야외 공원이 있다. 아담한 산책로와 꽃과 나무와 그 사이에 벤치들이 참 좋다. 특히 십자가의 길 14처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나는 이곳에서 홀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것이 좋다.

지난 봄 입원했을 때에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어 폐쇄되기 전에 하늘공원을 마지막으로 걸을 수 있었다. 잠깐 들렀던 하늘공원에서 기도와 묵상 중에 만났던 풀꽃들이, 아직은 쌀쌀한 늦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돌 틈에서 빼꼼! 하며 손을 내밀어 나를 응원하는 모습에 참으로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하느님은 작은 풀꽃을 통해서도 나에게 많은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가 2년 넘게 세상을 힘들게 하면서 병원 곳곳은 폐쇄와 출입금지 팻말이 가득하다. 덕분에 병실과 병원은 한산해져서 환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치료 분위기를 제공하였지만 나와 같은 돌쇠(돌아다니는 머슴. 마당쇠는 마당 일만 하는 머슴)들에게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2년여 동안 본관 6층의 도서휴게실은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아예 문을 잠가 놓았으니 안을 들여다 본 적도 없다.

마지막으로 성당이다. ‘나만의 최애(最愛) 장소’인 서울성모병원에서 고르고 골라서 가장 ‘최애’(最愛)는 당연히 ‘성당’이다. 공중에 매달린 십자고상을 멀리에서 바라보면 십자고상 뒤로 황동으로 만든 커다란 배 모양이 보인다. 아마도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것 같다. 성모님께 인사하고 성모님의 발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당 입구 왼쪽에는 환자와 가족들의 염원과 기도를 적는 노트와 미사 봉헌에 필요한 필기구와 봉헌 봉투가 놓여있다. 제주의 마라도 공소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순례객들의 기도를 모아서 공소의 안쪽 벽을 가득 쌓아 놓은 기도(책)들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나의 기도와 묵상들도 그 노트를 통해 하느님께 닿았을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둑한 조명 속에서 제대와 감실이 멀리 보인다. 마치 구약성경 요나서의 고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성당 내부의 왼쪽 벽에는 십자가의 길 14처 묵상길이 있고 뒤쪽으로 2층 난간과 반주를 위한 오르간이 보인다. 2층은 성당 밖의 외래관 2층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간혹 미사 시간에 늦어 성당 문이 닫히면 2층 창을 통해 미사를 관람(?)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야를 제단으로 향하면 커다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뒤집어놓은 모습의 제대가 보인다. 처음에는 제대 정면에 반원의 줄무늬가 있는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단순한 제대의 정면에 정말로 단순한 한 줄의 조각을 넣은 것이다. 흡사 미소 짓는 입모양처럼. 성당에 들어서면 저기 제단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미소 지으며 “힘들지 여기로 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며 심신이 지친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흘렀다. 참으로 좋으신 분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서 놀듯이 놀다가 나오는 길에 성당 뒷벽에 작은 성화 한 점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절벽에서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절벽에 매달린 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림이다. 그 밑에 동판에 쓰인 내용을 보고 나는 동판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주님, 제가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저에게 용기를 더해 주십시오.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글 _ 김정수
(베네딕토, 천주교 대전교구 가톨릭농민회 부회장)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보다 농사를 택하여 지금까지 농촌에서 살고 있다. 2018년 요막관암 3.5기 진단받고, 수술 후 항암 4년차이다.

삽화 _ 김 사무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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