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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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월간 꿈 CUM] 안성철 신부의 십자가의 길 묵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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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무거운 저희 죄에 눌리시어
세 번이나 무참히 넘어지셨으니
그 수난의 공로를 저희에게 나누어 주시어 
저희가 이미 지은 죄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신 그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또 다시 넘어지십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질때 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 넘어지심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세 번째 넘어지시는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이 참으로 인간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인성을 그대로 가지고 오신 분이시기에 참으로 한계를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닌, 바로 우리 옆에 서 계시는 참 이웃으로 다가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같은 병(病)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저도 얼마 전 심하게 몸살을 앓은 일이 있습니다. 몸살을 한번 심하게 앓은 사람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아본 사람이라야 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고, 또 다가가서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 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마치 매일 넘어지는 우리들처럼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참 이웃이십니다. 베드로 또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며 넘어졌습니다. 세 번이나 넘어지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나약함도 위로하십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또다시 일어서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저는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오뚝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오뚝이는 아무리 쓰러트려도 계속 다시 일어납니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계속 다시 일어서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마음속 무게 중심이 하느님의 뜻으로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혹시 쓰러짐의 고통 중에 계십니까?

삶이 주는 고통 때문에 주저앉아서 울고 계신가요? 

신앙에 회의가 들어 희망이 보이지 않나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무게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오뚝이처럼 저절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다시 일어서십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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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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