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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군인

[월간 꿈 CUM] 귀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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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군인이라는 삶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과 공통점을 지녔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첫 번째로, 어떻게 잘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뇌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소대장 시절 30여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비무장지대에서 지내다 보면, 그들과 나의 죽음이 늘 멀지 않게 느껴졌다. 교전이 벌어지면 적을 얼마나 무찌르고 죽을 수 있을까? 적어도 동급의 인원은 죽여야 아군 전투력 지수에 기여할 텐데. 나는 어떤 상황에서 죽게 될까? 그렇게 내가 어떤 상황에서 죽게 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었다. 군인에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부터 따라다닌다. 일찍부터 고난이 예기된 삶에서, 예수님 또한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죽음에 대해 깊이 번민하며 항상 마음속 깊이 품고 계셨으리라.

둘째로 멸사봉공의 삶이라는 점이다. 군인의 삶에 자신은 없고 오직 조직과 부대, 상관과 조국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군에 몸을 담은 후 거의 해마다 이사를 했다. 대위 시절에는 최전방에서 트럭을 타고 아침 열 시에 출발해 새벽 한 시가 돼서야 광주에 도착하고 큰 짐을 정리하고 나니 동이 텄다. 이런 이사를 40회 이상 했고, 아이들은 학교를 전학 다니다가 6번째 초등학교에서 졸업했다. 군의 고된 훈련과 긴 근무 시간, 명령과 지시로 움직이는 삶은 단순히 국가의 녹을 받기 위해서라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희생이 따른다.  공적 생활로 들어가신 이후 자신의 안위나 가족에 대한 연민을 모두 떨쳐내고 사신 예수님처럼, 군인에게도 조국 수호를 위해 투신하겠다는 마음이불가결하다.

셋째, 고독한 삶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군인의 삶은 훈련과 대기로 점철되어 있다. 중대장, 대대장이 되어 야전에서 부하와 함께 걷고, 뛰고, 훈련하다가 주둔지에 복귀해서 적의 도발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생활을 보냈다. 상급자가 되어 전방에서 다소 멀어져 지시와 확인하는 위치가 되더라도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생사를 짊어져야 하는 병사들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은 더 막중한 채찍이 되어 다가온다. 희생과 헌신은 숭고한 이념일 수 있지만, 그것에 몰두하는 동안은 개인은 고독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비록 목숨 바쳐 자신을 흠숭하는 제자들이 있었고,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인류가 찬미를 바쳐왔다 해도, 예수님의 삶에는 범인이 짐작하지도 못 하는 커다란 고독이 따랐을 것이다. 삶이 한 자루의 초를 태우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보다 주변에 많은 빛을 주고 사그라지는 것이 가치 있는 생일 터, 오늘도 예수님의 길을 묵상하며 한 농부의 작은 촛불을 태워가려 한다. 


글 _ 류성식 (스타니슬라오, 전 육군 부사관학교장, 수원교구 반월성본당)
1979년 소위로 임관한 후, 2012년 제30기계화보병 사단장, 2013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2014년 육군 부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2017년 전역했다. 이후 귀향해 농업법인 (주)일팔구삼을 설립, 햇사레 복숭아, 포도, 사과, 이천 쌀, 꿀 등을 농작하고 유통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를 위한 율면 장학회를 설립하는 등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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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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