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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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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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견디기 힘든 시련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고통의 이유를 궁금해한다.

왜 하필 내가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가?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지만 명확한 답변을 찾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인생과 관련된 고통은 대부분 그 원인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과정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남자나 여자로 태어난 이유, 혹은 특정 국가나 자신의 부모 아래 태어난 이유처럼 삶의 조건과 관련된 질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실마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주 작은 나의 선택으로부터 지금의 결과가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갈리스도와 레지나 부부는 결혼생활 38년 만에 이혼을 했다. 레지나는 세 명의 자녀를 모두 분가시킨 후 남편인 갈리스도에게 합의 이혼을 요청했다. 갈리스도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혼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아내는 자신을 잘 내조해 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잉꼬부부라는 평을 받지는 못했어도 평범하게 가정생활을 잘 꾸려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갈리스도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혼 이야기를 듣게 되니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실 레지나가 남편과 평생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첫 아이를 임신한 기간에 체험한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아이를 가진지 몇 달 안 되었을 무렵, 레지나는 구토와 어지러움을 동반한 빈혈증세로 힘들어했다. 게다가 국 냄새만 맡아도 속이 매슥거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다 뱃속 아이가 영양결핍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평소에는 남편의 직장에 전화를 하지 않는 레지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으니 일찍 퇴근해서 딸기를 좀 사달라는 부탁이었다. 남편인 갈리스도는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날 밤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딸기를 사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귀가했던 것이다.

레지나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바로 그 순간 자신은 남편과 헤어질 수 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이 남자를 평생 의지하며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과 남편의 가장 소중한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청을 잊어버리고 술을 먹고 귀가한 남편은 이미 말 그대로 남의 편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레지나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남자를 평생 믿고 의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신으로 굳어갔다. 아이들을 다 키워낸 후 레지나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삶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덕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도 가장 쉬운 일로부터 시작되고, 세상에 가장 위대한 일도 가장 미천한 일로부터 비롯된다.”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 「여씨춘추」에는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개미 언덕에 걸려 넘어진다”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체험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조그마한 선택과 결정으로부터 시작된 결과이다. 단지 우리는 그 선택과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와 같은 커다란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실 나로부터 발생하지 않은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공과(功過)는 자신의 업(業)에 따른 결과이다. 억울할 일도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도 없다. 그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인 것이다.

이처럼 삶의 시련과 고통은 대부분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이기심이나 욕망에 기초한 선택과 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어느 순간 큰 고통과 시련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비록 성공적인 삶은 아니더라도 후회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너무 늦게 철이 드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 같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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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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