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4)
“물이 저의 목까지 차오르고.”(요나 2,6)
어린 시절 장마철이면 빈번히 홍수가 발생하였습니다. 열악한 시골 배수로가 넘쳤고, 넘친 빗물이 붉은 토사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와 여러 날 가구와 옷가지들과 집안을 씻고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강과 호수 곁에 살았기 때문에 그곳이 놀이터였던 친구들과 수영하고 고기 잡으며 어두워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떤 친구는 그곳 강의 깊은 물에 빠져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울부짖으며 오열하시던 친구 엄마의 슬픈 모습이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아스라이 떠오르곤 합니다.
저 또한 여러 번 물에 빠져 죽을 뻔하였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아버님과 함께 나룻배를 타고 낚시를 떠났는데 아버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물놀이를 하다가 물속으로 빨려들어가 거의 죽을 뻔하던 저를 그곳에서 놀던 동네 형이 뛰어들어 구해준 숨 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는 내내 자주 겪게 되는 죽음의 순간들은 주님의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가슴 아픈 죽음으로 이승을 하직하였을지도 모를 숨 가쁜 순간들이었고 기적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가끔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슬픈 죽음의 부고장을 보내오곤 합니다. 어젯밤 답답한 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간밤의 크고 작은 병을 털고 일어나 상큼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면, 이 기적의 숨을 쉬게 해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명이 없던 흙덩이 사람의 코에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시어 비로소 생명의 숨을 쉴 수 있는 인간을 만드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은(창세 2,7 참조)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처럼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드신 세상이 점점 무서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미세 먼지로 숨이 막히는 것도 모자라 수년째 전염병으로 쓰게 된 마스크도 숨 막히는 현실이 되어 우리를 공포와 불안에 더욱 가쁜 숨을 쉬게 합니다. 인간들이야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른다고 하지만, 죄 없는 하느님 창조의 수많은 아름다운 피조물들이 인간의 죄로 숨을 쉴 수 없어 헐떡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하며 찬미하셨던 우리 형제자매인 피조물들이 숨을 쉴 수 없어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깊이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우리 누이이며 형제인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모든 피조물들이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를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땅은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창세 2,7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 「찬미 받으소서」, 제2항)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녹아 떨어져 내리는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인간이 버린 비닐 쓰레기를 코에 뒤집어쓰고 숨을 헐떡이다 죽어간 바다 거북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의 숨 막히는 슬픈 현실들은 우리의 숨을 쉴 수 없게 만듭니다.
온갖 쓰레기로 거대한 산이 되어버린 끔찍하고 더러운 곳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뒤지고 있는 어린이들의 가녀린 손을 보면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구 여러 곳에서 수년째 비가 내리지 않아 호수와 강이 말라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모습에는 더 이상 우리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타는 목마름의 죽음을 떠오르게 만드는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그럴 때 꿈속에서는 어린 시절 익사 사고로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끔찍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연 요나의 말처럼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물이 목에까지 차오르며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급하게 말을 걸어옵니다.
“시작이 반이고, 늦었다고 생각할 그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하느님 창조의 아름다운 세상을 살리는 가장 시급한 일! 지금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