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5)
“주 저의 하느님.”(요나 2,7)
구약성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를 탈출한 후 40년 광야의 혹독한 고난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다짐받으며 자신이 그토록 희망을 걸고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던 하느님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7)
사실 우리는 하느님을 간절히 부르지 않았습니다. 인생 저 밑바닥에서 목이 타도록 하느님을 애타게 찾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분을 필요로 하지 않았거나 곁에 계시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분을 내 인생을 간섭하거나 통제하시는 억압의 하느님으로 생각하며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속에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에 머무는 이는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신뢰하네.’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하여 영예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오래 살게 하여 흡족케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리라.’”(시편 91,1–2; 14–16)
이 시편의 말씀을 이현주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시는 함부로 읊을 게 못 된다. 지금 ‘환난 중’에 있는 자만이 이 시를 읊을 자격이 있다. 자칫 잘못 읽으면, 천만 이웃이 고통을 당해도 나만 끄떡없으면 된다는 고약한 불감증을, 저주받을 이기심을 키워줄 뿐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파도 속에서 마지막 목소리로 부르짖는 자에게만 이 시는 힘차고 아름다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지금 환난 중에 있는 자에게만 이 시는 진실이다.”(이현주,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생활성서, 41쪽)
진실로 성경의 의인들은 모두 절망 가운데서도, 유혹 중에도,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또한 천국의 자랑스러운 성인 성녀들도 자신들의 삶에서 인간의 부족한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애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주님 말씀을 분명히 들었고, 그 말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처음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천주, 내 주 하느님을 부른다 함이 어인 말인고, 그를 부름이 내 안으로 불러 모심이거늘? 내 하느님이 내게 오실 자리가 내 안에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최민순 역, 바오로딸, 24쪽)
그러나 그토록 하느님을 찾고 부르던 성인께서 드디어 만난 하느님 사랑의 기쁨을 이렇게 벅찬 감동으로 고백합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같은 책, 283쪽)
현대인들의 가장 큰 병은 여러 전염병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부르지 않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실로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 아닌 여정이 없었는데, 우리가 주님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고백처럼 주님을 부른다 함은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을 애타게 부르지도, 모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고난과 고독의 외로움을 온몸으로 떠 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요나가 또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제가 붙들 수 있는 희망은 주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놓아 울부짖었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그리고 저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희망과 구원의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