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7)
“저는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요나 2,8)
저는 성경을 읽을 때와 묵상할 때 늘 깊이 탄복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삶과 기적, 그분 사랑의 가르침인 복음을 묵상할 때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예수님의 삶을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사가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가톨릭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글은 늘 제 마음에 깊고 큰 울림을 줍니다.
“예수의 실제 모습이나 얼굴은 그와 함께 살았던, 예수와 마주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예수의 생애를 전하는 성서조차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외모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예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를 알던 사람들이 평생 그를 잊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엔도 슈사쿠, 「예수의 생애」, 가톨릭 출판사, 8쪽)
과연 예수님의 생애를 글로 기록한 제자들의 머리에선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랑의 마음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사가들 중에서 예수님을 향한 그 절절히 사무치는 마음을 가장 깊이 간직한 분은 어쩌면 마태오 복음사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증오하고 죽여 버리고 싶어 했던 세리였습니다. 같은 동포의 피를 빨아 침략자 로마에게 바치고 자신도 착취하며 살던 매국노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배는 불렀을지 몰라도 삶은 언제나 불안했고 늘 두려움에 살아야 했던 세리 마태오의 삶은 초췌했고 벌레 같은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세금을 걷기 위해 동포들과 싸워야 했고 그들의 멸시와 증오의 눈빛을 두려워하며 악몽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다른 인생의 환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삶에 밝은 태양의 빛이, 찬란한 광명의 빛이 비치고 비로소 참 평화를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꿈같은 시간을 향유하며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 자주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원한 꿈이 깨이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 극적인 행복의 주인공인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회상하고 추억하며 그분 사랑과 환희의 가르침, 축복의 말씀, 기적, 치유와 용서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서를 집필하면서 마태오는 수없이 펜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었을 것이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자주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참혹한 수렁에 빠진 자신을 부르는 대목을(마태 9,9 참조) 기록할 때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어 눈가가 짓무르도록 긴긴 밤을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태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 또한 뜨거운 눈물이 납니다. 어쩌면 마태오처럼 우리 또한 죄인인 까닭에 같은 심정에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렇게 탄생된 것입니다.
때문에 엔도 슈사쿠의 주장은 진실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과연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우시는 모습이나 기뻐하시는 모습, 죄인을 용서하시는 자애로운 눈길, 가엾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바라보시며 치유해 주시는 측은지심의 마음은 그분과 함께 뜨겁게 살았던 사람들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복음서를 읽을 때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마태오 복음사가처럼 예수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으로 기억하고 회상하며 사랑으로 기록한 분들의 노고의 눈물 덕분일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마르지 않는 감동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더 뜨겁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영성의 깊은 샘물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찬례를 남겨 주시어 교회가 날마다 당신의 파스카를 기억하고 깊이 참여하게 하셨습니다.(루카 22,19 참조) 복음화의 기쁨은 언제나 감사하는 기억에서 생겨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신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제13항)
그래서 요나가 또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제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큰 도시 니네베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구렁에서 건져 주시어 평화를 살게 해주신 주님의 은총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신앙은 ‘사랑의 기억’에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