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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월간 꿈 CUM] 안성철 신부의 십자가의 길 묵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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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는 나라에서 쫓겨나 19년 동안 유랑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개자추(介子推) 등 충신들이 수족처럼 옆에서 보필했기 때문입니다. 그 충신들 덕분에 중이(重耳)는 마침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진(晉) 문공(文公, BC 697 ~ BC 628)입니다.

650여년 후,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님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50)

예수님이 체포될 때, 그리고 홀로 십자가에서 외롭게 돌아가실 때, 그곳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젊은 제자는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옷을 벗고 알몸으로 달아나기도 했습니다.(마르 14,52 참조) 십자가 옆에는 성모님과 소수의 제자, 그리고 신심 깊은 몇몇 여인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쓸쓸하게 예수의 성해가 이제 십자가 아래로 내려옵니다. 두려움과 고통이 다 떠난 그 정막 속에서 예수님이 차가운 시신으로 내려옵니다. 높은 곳에 매달리셨던 왕이신 그 분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6)

또 예수 자신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세상에 왔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기 위함이었습니다.(마르 10,45 참조)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책임져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낮은 곳에 머물며 섬기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영적인 은총이 큽니다. 그것은 낮은 곳에 머물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이고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그 진리를 십자가에서 내려짐으로써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피에타 조각은 성모님이 예수님을 무릎 위에 안고 지극한 슬픔 속에 머무시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모님도 그런 마음으로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안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당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실 때 천사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생각하셨을 것이고, 시므온으로부터 들은 예리한 칼에 베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루카 2,35 참조)

우리도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어 안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나의 삶을 함께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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