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9)
OSV
전 부산교구장 정명조 주교의 유고집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에 정 주교가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내던 노부부의 일화가 나온다. 매일같이 불우 시설과 이웃을 찾아다니며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아내는 어느 해 봄, 주님의 만찬미사에 참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광안대교 위로 뜬 둥근달을 보라는 남편의 말에 “어제가 보름날, 내 생일이었으니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늘 하던 대로 뒷좌석에 기대어 쉬는 듯 그렇게 하느님 품으로 떠났다.
한 일간지 귀퉁이에 소개된 영국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사연도 가슴을 울린다. 할머니의 죽음 후 그녀의 유산 가운데 일부는 생전에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전달됐다. 그들은 앞을 못보는 그녀를 위해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작은 친절과 배려가 큰 갚음으로 돌아왔다.
가톨릭에선 죽음을 ‘선종’(善終)이라 부른다.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의 준말인 선종(mors bona, mors sancta)은 “일상에서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살다가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가톨릭 대사전은 풀이했다. 어쩌면 선생복종(善生福終)은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소망이자 염원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 ‘무욕’(無慾)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한다. 죽음 묵상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열어준다. 또 무엇을 믿고, 바랄 것인가에 답을 준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聖傳) 안에서 구원자이신 예수, 하느님, 영원한 생명을 만난다. 신앙의 원천은 우리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깨달은 대로 살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삶을 따를 용기와 지혜를 우리는 그곳에서 얻는다.
신앙은 구호나 장식이 아니다. 내가 필요할 때 부르는 긴급호출도 아니다. 신앙은 삶이요, 실천이다. 신앙은 곧 사랑이다. 마더 데레사, 헨리 나웬, 막시밀리안 꼴베, 에디트슈타인…. 교회가 공경하는 현대의 성자(聖者)들은 모두 그러한 삶을 발견하고 그 삶에 투신한 이들이다. 그래서 복된 삶과 죽음(善生福終)을 맞은 이들이다.
죽음을 기억하며(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하느님을 묵상하다(Memento Deum, 메멘토 데움).
사순절을 맞으며 문득, 그렇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