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언을 전해주던 앞의 주일 복음과 달리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저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성경 구절은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입니다. 하느님이 ‘농부’라니,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저에게 농부는 푸근한 인상, 그러나 누구보다도 진실하게 땀 흘리는 삶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은 저 멀리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사람이 뭘 잘못하나를 감시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포도밭에서 열심히 일하며 좋은 포도나무들이 자라도록 땀 흘리며 애쓰는 농부라고 예수님은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밭에는 돌이 있고, 잡초도 있고, 해충들도 있기에 농부는 바쁩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거름도 주고, 비바람에도 대비하고 때론 가뭄이 들 때 물도 대어주어야 포도나무가 잘 자라기에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로 바쁘실 것 같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도록 온 인류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느님의 초대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초대에 응한 사람들에게는 사명을 주시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다 더 사랑하시는데 온 힘을 다 하실테니까요. 아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믿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이 가장 흡족해하는 포도나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포도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빛, 적절한 비, 땅이 주는 영양분이 다 필요하듯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 은총과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섬기는 삶 모두를 양분으로 해서 살아가셨고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풍성한 열매를 살아가는 내내 맺고 나누셨기에 그렇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가장 건강한 ‘참 포도나무’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이 말씀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과 내 인생이 별 관계가 없는데도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말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면, 내 인생은 나 혼자 알아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인생의 진실을 물으며, 그분의 삶에서 구원의 신비를 발견하고, 따라 살아가고자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 우리는 성경 묵상을 통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아무 걱정도 없이 알아서 잘 살아가신 분이 아니라, 인간이 갖는 한계와 어려움을 온전히 겪으면서도 인간의 삶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있고, 그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신 ‘나와 같은’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성사 생활에 참여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에게서 내 삶의 근원적 지혜와 힘을 얻고 그분의 제자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삶은 너무 이상적이기에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일 것입니다. 오히려 인생이 쉽지 않고 치열하다고 느낄수록, 나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인생을 허락하셨는지, 우리는 어떻게 인생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살 수 있는지를 묻고 배우도록 초대받은 것이 축복 아닐까요?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는 내 경험, 내 생각, 내 판단이 옳다고 믿고 그것들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그분이 삶에서 가장 중시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나 역시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것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 삶의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맺게 해주는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우리가 정말 원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이 필요한 은총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맺는 열매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이고, 이렇게 서로 사랑할 때 아버지 하느님이 영광스럽게 된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을 부활과 연결지어 다시 묵상해 봅니다. 부활은 단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걸었던 사랑의 길이야말로 죽음을 이기고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 길임을 고백하는 사건입니다. 사랑의 길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사랑의 길을 믿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알게 되고 새롭게 태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셨을 뿐 아니라 그 구원 사업에 우리도 참여하라고 부르십니다.
부활을 체험하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이라 고백하고 그분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알아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농부이신 아버지 하느님은 포도나무가 건강히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시고, 건강한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달린 가지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사도로 파견하시면서 축복하십니다.
글 _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