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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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 (2)

[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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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전'

 


Q. 요한복음서의 신학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A. 공관복음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마치 ~과 같다’라는 비유적 표현이 요한복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대신 ‘나는 ~ 이다’라는 표현으로 예수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진술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복음서라고 합니다.

또한 요한복음서는 ‘성령’(14-16장)과 ‘사랑의 복음서’(13,31-35; 15,11-17)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계명(14,21.23; 15,12 참조)을 강조하시고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13,1 참조)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을 ‘생명의 복음서’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음 저술의 목적이 생명을 얻게 하려는 데 있음을 단언(20,31 참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공관복음과 비교할 수 있는 주제어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요한복음서에는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이 두 번(3,3.5) 사용됩니다. 대신 ‘영원한 생명’ 또는 ‘생명’이라는 단어는 36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생명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5,26), 생명이신 그리스도(11,25; 14,6)와 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5,24)고 말합니다.

끝으로, 요한복음서는 ‘믿음의 복음서’입니다. 저술목적(20,30-31)에도 드러나듯이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동사 ‘믿다’는 98번이나 나오는데 명사 ‘믿음’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명사가 추상적이고 개념적 성격을 지니는 반면, 동사는 구체적이고 역동적 성격을 지닙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요한복음은 단순히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구체적이며 다양한 차원의 믿음을 드러내는 ‘믿음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믿음의 대상은 하느님이 아니라 항상 예수님,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행적입니다. 이러한 말씀과 행적을 통해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이시고(5,18; 10,30; 14,9; 19,7), 하느님과 똑같이 생명을 지니고 계시며(5,26; 11,25; 14,6), 심판하실 권한을 갖고 계시다(3,19; 5,22) 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Q. 요한복음이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A. 요한복음에는 ‘믿음’이라는 명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동사 ‘믿다’는 98번이나 나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행동을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명사보다 동사를 선호하는 것은 그가 신앙을 내적성향으로 여기지 않고 자발적 위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다’ 또는 ‘신뢰하다’는 예수님과 그분께서 선포하신 바를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그분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믿음의 우위성과 선행의 중요성은 부딪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입니다.(6,29 참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과 계명 안에 머무르겠다는 뜻을 내포합니다.(8,31; 1요한 5,10 참조)

성경, 특히 요한복음에서 신앙은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를 믿는다’라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적극적 응답과 투신을 의미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하며, 그분의 인격과 선교에 자신의 전 생애를 봉헌함으로써 그분의 제자가 되라는 초대에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제자됨은 동의어’입니다.


Q. 공관복음서의 ‘믿음’과 요한복음서의 ‘믿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A. 공관복음의 믿음은 구약성경에서 일관되게 믿음의 자세로 부각되던 그 신뢰입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당신이 메시아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능력으로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마르 9,23 참조)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핵심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계시를 받아들이고, 한 분이신 이 구원의 중개자와 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서의 믿음은 본질상 구원과 관계됩니다. 믿음의 구원적 의미는 영원하고 신적인 생명을 중개해 주는 데 있습니다. 벳자타 못 가의 치유 사건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묻게 만듭니다.(5,12 참조)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에서도, 이 사람을 실로암 못으로 보내 눈 뜨게 하신 이분은 누구신가라는 물음에 모든 관심이 집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눈먼 사람에게 비춰 주신 그 빛은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9,5)이요, 영원한 생명의 빛(8,12)입니다.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11,25-26)이라는 계시의 절정입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께서 부단히 요구하시는 믿음은 그리스도론적 신앙고백입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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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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