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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 아가타, 삯바느질로 노모와 어린 동생 돌보며 신앙생활

[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18. 성녀 이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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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작 ‘성녀 이 아가타’

출 생 | 1784년 경기도 이천시

순 교 | 1839년(55세) 서소문 밖 / 참수

신 분 | 과부




육신의 생명을 부활로 성숙시킨 성녀

5월 첫 주일은 생명 주일이다.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부활이고, 부활 축제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만천하에 고하는 선포다. 그러므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부활을 살아가는 삶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옛 교우들이 신분과 빈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거나 가난한 이웃에게 애덕을 베풀었다는 흔한 이야기는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성찰하게 한다. 인권이라는 말을 몰랐더라도, 생명의 가치를 세련되게 말하지는 못했어도 그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부활한 생명을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순교자가 그렇지만 성녀 이 아가타의 삶은 고난에 찬 생애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신 육신의 생명을 부활로 성숙시킨 그리스도인의 전형이다.



동생 이호영 베드로와 함께 체포돼 순교

이 아가타는 이호영 베드로 성인의 누나다. 16세에 출가하여 자식도 없이 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구약의 백성들은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는 과부를 두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곤 하였다. 하지만 생명을 대하는 아가타의 태도는 구약의 백성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았다. 삯바느질로 늙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연명하면서도 열심히 수계하며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남편과 자식 대신에 노모와 어린 동생이 주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천주의 뜻을 받든 그녀에게 비관이나 절망은 없어 보였다. 언제나 평화로웠고, 얼굴에는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기해일기」는 증언한다.

아가타는 1835년 동생과 함께 체포되었다. 4년의 혹독한 옥살이에도 한날한시에 순교하자며 동생을 격려하는가 하면, 옥 안의 사람들에게 착한 교우의 표양을 보였던 모양이다. 거칠기로 소문난 옥졸도 ‘천주교의 도리가 아름답다’고 칭송하였다 한다. 늘 그랬듯이, 감옥의 험악한 죄수들에게까지 밝은 미소와 친절한 언행으로 존중하며 배려하지 않았을까. 아가타는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칼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렇게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갔다.



이 아가타 성녀 기리는 단내성가정성지

성녀를 기리는 단내성가정성지의 미사에 참석하였다. 미사가 끝난 후 인적이 없는 계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총 5.2㎞의 순례 코스를 우산을 들고 빗길을 걸었다. 박해받던 신자들의 은신처였던 ‘굴바위’를 지나 ‘검은 바위’에 다다르니 “아~”하고 탄성이 나왔다. 빗물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는 ‘검은 바위’와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물방울과 조우하는 초록의 부드러움이 신비로웠다. 숲 한가운데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두 손으로 묵주기도 올리며, 삶의 역경을 선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우아한 자태의 아가타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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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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