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를 설명하려면 당혹스럽다. 우리의 이성이 상식을 초월하는 진리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한히 자유로운 분을 언어의 틀 속에 가두려는 시도조차 우리네 방식대로 하느님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아닐까 한다. 그럴수록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경이로워진다. 그들은 하느님을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었다. 이해하는 대신 깊은 신뢰로 사랑을 드렸다. 성부·성자·성령을 세련된 언어로 설명하지 않았어도, 사랑이라는 공통된 끈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엮어가며 하느님 나라를 갈망했다. 핍박 중에도 성부와 성자·성령의 성호경을 그리면서 하느님을 인식하였다.
동생 방제 대신해 일생 교회 위해 헌신
어린 아들 방제가 사제가 되기를 바라며 먼 외국으로 떠나보낸 최 야고보와 황안나는 순교자 최수와 성인 최형 베드로의 부모이기도 하다.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서일 것이다. 동생 방제는 어리고 순결한 자신을 바쳐 이국땅에서 먼저 제물이 되었다. 최형은 동생을 대신해 일생 교회를 위해 봉사하다가 1866년 서소문에서 순교했다.
동생의 동료 김대건과 최양업이 최형에게는 더욱 애틋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대건과 함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온갖 죽음의 문턱을 넘어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신부를 조선으로 모셔왔다. 그는 선교사 신부님들의 손발이 되어 복음 전파에 협력했으며, 종교 서적을 베끼거나 묵주를 만들면서 외교인과 예비 교우들에게도 친절을 다했다. 인쇄소의 책임을 맡아 주님의 말씀을 서적으로 보급한 마지막 소명까지 그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주님 영광의 모습이다.
한 분 하느님께서 세 위격으로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였던가. 최형 성인과 그의 가족을 보면 각자의 방법으로 하느님을 사랑함과 다양하게 드러난 하느님의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노력조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위한 기적의 도구로 삼아주셨다. 앞서간 동생 방제에 대한 사랑과 그가 못다 이룬 사제의 꿈까지 최형과 가족이 함께 이룬 기적이라고 믿고 싶다. 방법과 모양은 다르지만 하나의 사랑을 실현해 낸 것은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그가 삼위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온몸과 마음·영혼까지 바친 최형 성인
박해 시대의 아픔을 딛고 오늘날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본당으로서 서울 중심부에 우뚝 서 있다. 힘들 때 마음의 위안과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은 성전 문을 들어가서 자리에 앉는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신앙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일구어낸 성전이 그곳에 있다. 주님의 자비와 성령이 가득한 제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몸과 마음·영혼까지 바친 성인의 굳건한 모습을 만나게 되고 깊은 감동과 뭉클함이 밀려와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