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11)
RUBENS, Peter Paul - The Gonzaga Family Worshipping the Holy Trinity 1604-05
로사리아 수녀님과의 인연도 어느덧 20년째입니다. 수녀님을 처음 뵌 것은 경남 고성 가르멜수도원에서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자를 찾아가는 노(老)은사를 따라, 그 빛나는 만남을 취재하러 간 자리였지요. 2001년 10월의 어느 좋은 가을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산 이우락 선생님과의 동행 취재 때입니다. 수녀원 앞뜰을 오르는 스승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레임과 감사함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시간 가까이 이어진 면회 동안 저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을 목격했지요. 수녀님은 40년도 더 지난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선생님을 또렷이 기억했고, 선생님도 “수녀님은 그때도 군계일학이셨다”며 화답했습니다.
이후 2011년 말 이우락 선생님을 통해 로사리아 수녀님의 서신을 받은 뒤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작년 3월엔 저희 가족 모두 수녀원을 방문해 공동체 수녀님들을 함께 뵙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열네 분 수녀님들 한분 한분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돕니다. 저희 가족을 바라보시던 수녀님들의 따스한 눈빛과 미소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도 눈물이 고이는 것은 그분들의 맑은 미소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매번 로사리아 수녀님으로부터 편지와 수녀원에서 재배하고 만든 케잌과 야채, 매실액기스까지 푸짐한 선물을 받으며 송구한 마음입니다. 가르멜회 영성과 성인들에 관한 자료들도 가끔 보내주십니다. 언젠가 2016년 10월 성인품에 오른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님에 관한 소책자를 받았습니다. 그 소책자의 제목이 ‘빛, 사랑, 생명으로’ 입니다.
저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한마디에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문쟁이의 기질을 살려 한 마디 보태자면 “~으로” 보다는 “빛, 사랑, 생명에로”가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만^^.
이 말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님이 이승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단순하지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우리 신앙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죽음도 넘어선 희망. 바로 빛, 사랑, 생명이신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하고 감사할 노릇입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