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학생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미사를 기다립니다. 경당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아이들이 몰려오곤 하는데요. 미사에 참례한 학생들에게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생명의 빵’ 보다는 ‘간식’을 찾아서 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곧잘 두 손을 모으고 성가를 함께 부르며 기도 소리에 목소리를 보태곤 합니다만, 미사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단지 간식을 먹고 싶어서 온 아이들이다보니 가끔은 애를 먹기도 합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아이도 있고 계속해서 잡담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신 분들은 여쭈어보시곤 합니다. “신부님, 아이들이 이 미사의 의미를 알까요?” 아이들이 미사에 몰입하는 것 같지도 않고, 신부님 이야기도 잘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간식비도 많이 드는데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하고 말이지요. 그럴 때면, 오늘 마주하는 복음 이야기를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날 마지막 만찬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예루살렘에 들어온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서 먹고, 1주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파스카(페사흐)와 무교절 축제인데요. 이 무렵이면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순례객들은 묵을 방을 찾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예수님 일행은 ‘큰 이층 방’을 마련합니다.(학자들은 이 방의 주인이 마르코 복음사가라 보았습니다만, 근래에는 사도 요한이 속한 사제가문의 별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지지하고 따르던 사람 중에는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있었음을 생각할 만한 대목이지요.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신다는 파스카 축제, 환영받으면서 들어온 예루살렘, 부러울 것 없이 큼직한 방에 모인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장담에서 유다의 배신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생각이 있었겠지요. 그 모두를 세세히 헤아릴 길은 없지만, 분명하게 짐작해 볼 만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 마음과 같은 이들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당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습니다. 함께 나누어 먹은 그 빵은 예수님의 부서진 마음 조각이었다는 것을. 함께 나누어 마신 그 잔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제자들은 그 만찬을 행하고, 만찬 때의 일을 입으로 말하고 글로 써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의 그분을 기념하고 기억해 왔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말씀을 듣고 빵을 떼어 나누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성찬례에 참례하고 있나요.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성체분배자는 성체를 전해드리면서 “그리스도의 몸”하고 초대하며, 성체를 배령받는 교우는 “아멘”하고 응답합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아멘”이라는 대답은 할 수 없고, 여러분 각자가 나름대로 대답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아멘” 외에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으시는가요. 다시 질문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성체를 받으면서 “아멘”하고 응답하실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우리는 그 말그릇에 어떤 마음을 담고 있습니까.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몸” 그 한마디는 선언이자 질문입니다. 이 동그란 밀떡의 모양으로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을 받아먹은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멘”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아우릅니다. “아멘”은 믿음입니다. 이 작은 빵조각이 주님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아멘”은 동의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방식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아멘”은 기억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음식이 되셨다는 것, 우리가 주님을 음식으로 먹었고, 그래서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멘”은 성찰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먹은 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묻습니다. “아멘”은 다짐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실천하기로 합니다. 적어도 그의 삶과 방식을 흉내내보기로 합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그렇습니다. 성찬례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도 하나같지는 않겠지요. 때로는 질문과 의심, 때로는 무심하고 냉담한 마음, 때로는 한없이 기대고 싶은 마음도 “아멘” 말마디에 담아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말로는 다할 수 없어, 우리 마음을 “아멘” 한마디에 담아내는 것이겠지요.
미사를 마치고 핫도그 배달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에 누군가가 다시 물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핫도그에 담은 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같을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이들이 무심히 핫도그를 먹다가, 불현듯 우리의 눈길과 사랑을 기억하기를 바란다고요. 그때라도 아이들과 우리의 마음이 만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라고요.
지금은 어긋난 그 마음도 언젠가 결국 하나가 된다고 믿습니다. 제자들은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사랑을 기억하며 행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모신 조각난 빵에는,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부서진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도 그 빵을 모시며, 그 사랑을 조금 더 닮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글 _ 전형천 미카엘 신부(대건중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