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12)
지난 호에서 가르멜수도회 성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님의 유언 “빛, 사랑, 생명에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잘 드러내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깊이 깊이, 맑게 맑게’라는 것도 있습니다. 풀어서 설명드리면 “예수님은 아빠 하느님을 깊이 깊이 사랑하고, 맑게 맑게 드러내셨다”는 말씀을 줄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서신학의 대가이신 정양모 신부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신학교에서 짧은 배움을 경험한 저는 그때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는 두 분 교수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철학자이신 정달용 신부님이시고, 또 한 분이 정양모 신부님입니다. 아쉽게도 정양모 신부님의 말씀은 어떤 형태로든 직접 들은 적이 없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정양모 신부님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 인연이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다석(多夕) 유영모에 관한 자료와 책들을 접한 뒤로 한동안 다석의 사상에 깊이 몰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양모 신부님이 2005년부터 한국다석학회 회장이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최근엔 다석의 시조 2500수에 대한 풀이서 집필 작업도 끝낸 것으로 압니다.
다석 유영모(1890~1981)는 아직까지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입니다. 그를 아는, 또 그를 따르는 후학들에 의하면 다석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입니다. 보통 함석헌과 김교신, 김흥호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함석헌에게 붙여진 것처럼 ‘무교회주의자’라는 낙인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는 정양모 신부님의 “예수님은 아빠(Abba) 하느님을 깊이 깊이 사랑하고, 맑게 맑게 드러내셨다”는 이 한 말씀 안에 그리스도 신앙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참으로 깊이 사랑하셨고, 맑게 드러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그분의 삶을 우리 삶의 기준이요 모범으로 따르는 신앙인들 역시 하느님을 깊이 깊이 사랑하고, 맑게 맑게 드러내는 것이 자식된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깊이 사랑하는데 망설임이 있을 수 없겠지요. 맑게 드러내는데 사심이 끼일 여지는 더욱 없습니다. 계율과 교리, 전통 모든 것이 이를 위한 것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아빠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고 맑게 드러내는 것만이 우리 인생의 의미요, 목적입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