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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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1주일- 시나브로 성장하는 신앙

유승록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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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활의 시작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이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반대자들의 비난과 모함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오늘 복음의 내용인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땅에 뿌려져 저절로 자라는 씨앗에 비유하십니다. 씨앗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어김없이 수확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나라도 그 성장 과정을 매 순간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완성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씨앗이 자라는 과정을 조바심내지 않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하듯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완성을 긴 호흡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분명히 일하고 계시다는 믿음과 확신이 위기의 순간에도 제자들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어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가 크게 자라나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좁쌀보다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땅에 뿌려져 자라나면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그 그늘에 새들이 깃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겨자씨의 왜소함과 그 겨자씨가 성장한 이후의 풍성함이 대조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듯 거스를 수 없는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은 사람들의 모든 기대를 넘어서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에는 그 시작이 비록 작은 겨자씨처럼 미약해 보일지라도 종국에는 놀라운 결실을 드러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반대자들의 몰이해와 비난을 이겨내도록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믿음이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씨앗들처럼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지금은 미약하게 느껴지는 믿음도 변화되고 성장하여 충만한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시편 8,5-7) 시편의 저자가 노래하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귀하게 만드셨고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여 돌봐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의 성장이 자신의 계획대로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하느님께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계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심하면 신앙에 회의를 품거나 냉담한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을 여유 있게 지켜보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자라나는 씨앗의 변화를 매 순간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성장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듯이 하느님의 다스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키고 완성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7) 우리는 그분의 협력자이니 하느님의 일하심을 믿고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작은 씨앗의 형태로 시작된 하느님 나라가 성장하여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에 더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갖고 일상의 분심들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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