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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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의 형상인가? 인간이 AI의 형상인가? 우리가 물어야할 곳

[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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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개인’은 자기 자신과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부모에게 질문하고 부모로부터 답을 얻습니다. 그러다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사회 혹은 세상에 묻고 사회나 세상으로부터 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으로부터 거짓과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면, 방황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안다는 자체를 회의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어디에 묻고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요?

맹자는 「진심 上」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맹자 고유의 말이 아니라 유학사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 「맹자, 진심 上」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 수 있고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하늘이 인간의 본성(인간다움)을 부여했기에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떨리는 울림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개인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마음을 다해 본성을 안다는 것은 오직 나 개인이 홀로 하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개인은 하늘 앞에 서서 묻고 답을 구합니다.

인류사적으로 인간은 신화의 시대에 신들에게 묻고 신들에게서 답을 구했습니다. 자연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에 묻고 자연에서 답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인간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이성에 묻고 이성에서 답을 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시대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AI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묻고 그에게 답을 얻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와 오류, 거짓과 편견투성이인 인간보다 헤아릴 수 없는 정보와 빠른 판단의 인공지능 능력이야말로 거의 신의 능력에 가깝습니다. 이제 대학에서조차 인간 이성이 아니라 챗(Chat) GPT에 자리를 내주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편리한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의존이 우리의 삶을 과연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는 의문스럽습니다.

AI 인공지능은 최대한 많은 데이터 정보를 빠르게 입력 저장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으로부터 학습되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AI 역시 인간과 같이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합판단을 합니다. 이제 챗 GPT가 인간과 대화하면서 종합판단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깊숙이 인공지능에 묻고 답을 구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흡수한 기초 데이터 정보가 상당수 왜곡된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인류가 쌓아온 지식은 구분하기조차 어렵게 거짓과 진실이 얽혀 있고, 언젠가 뒤집힐 내용들이 많습니다. 또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어왔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논리, 군더더기 없는 형식, 어떤 전문가보다 다양하고 많은 지식이 귀결된 인공지능의 답변 뒤에 숨겨진 거짓 우상에 광신적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 믿음으로 인간은 신과 같이 전지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믿고 사는 세계가 계몽이 아니라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맹자가 하늘을 대면하여 그 앞에서 답을 구한 것은 1+3=4와 같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나 개인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인간 실존과 구원을 물은 것입니다. 그 길의 기준이 하늘이 부여한 마음속 울림에 있기 때문에 맹자는 그 본성(性) 앞에 서 있으라 한 것입니다.
 


AI에 대한 광신적 믿음이 ‘인간다움’의 길조차도 그 앞에서 묻고 답을 구하는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레시피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는 것은 또 아닐까요? 지금까지 인간이 주인이 되어 만든 산업 자본주의 세계와 소비 세계는 더 많은 정보와 더 빠른 처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줄 AI인공지능 시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모방하여 만든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묻고 모든 답을 구한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모상(형상)이 되어 버리는 역전의 날도 오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개인)’라는 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보편적 인간도 아니고, 추상화된 객관적 진리도 아니며, 세상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으로서도 아닌, 고뇌하며 절망하고 불안한 오직 ‘나’라는 고유한 ‘개인’으로 ‘신’ 앞에 서라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참된 진리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키에르케고르처럼 하늘을 신이라 말하지 않지만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스스로를 세워놓으라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이라면, 인간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하느님의 울림에 고독해도 홀로 자신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AI 앞에 맹목적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놓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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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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