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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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돌려 프레임 밖을 봐야 나만의 ‘준거 틀’ 작동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73 미디어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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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치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면 같이 쓰레기를 버리고 깨진 유리창에 돌을 던지듯이 그렇게 익숙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출처=pixabay


누군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면 곧바로 그곳에 쓰레기가 쌓인다. 한 사람의 부주의한 행동이 또 다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에 의하면 거리에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곧바로 그 지역은 범죄의 온상이 된다고 한다. 방치된 깨진 유리창을 보면 ‘마음대로 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깨뜨리고 범죄율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언론이 특정 인물에 대해 프레임을 씌워 부정적 이슈 하나를 터뜨리면 악성 댓글이라는 돌이 하나 던져진다. 그러면 시도때도없이 근거 없는 비방과 악성 댓글이 달려든다. 언론은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작은 부분만 집중적으로 크게 부각시킨다.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면 악플 세상이 된다. 언론 프레임은 작을수록 더 대중의 흥미를 끌고, 자극적일수록 상업적·정치적 이득을 취한다. 프레임이 만들어낸 편견은 대중의 시선이 되고 진실마저 굴복시키는 강력한 여론이 생성되기도 한다.

프레임은 ‘틀’이다. 프레임 이론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볼 때 해석하는 준거 틀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가치와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치와 관점은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체험과의 만남에서 느리게 쌓여간다. 반면 미디어 ‘프레임’은 한순간 빠르게 대중의 시선을 고착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어쩌면 우린 오늘도 미디어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전철을 타고 내릴 때 보이는 전광판에 ‘선한 스타 ○○○’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우린 유명 연예인을 ‘스타’라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다. 별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만질 수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다. 선망과 우상의 대상이다. 미디어를 통해 스타를 바라보는 대중의 프레임은 매우 견고하다. 스타는 반드시 빛나야 하고 선해야 한다. 이런 대중의 욕망은 자기 마음대로 스타에 대한 이미지를 덧씌워 ‘틀’ 안에 끼워 넣는다. 스타의 부와 명예가 치솟는 만큼 대중의 기대치도 함께 올라간다.

하지만 카메라를 조금만 움직여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면 인간은 결코 하늘에서 빛날 수 있는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어둡고 습한 음지에 뿌리를 두고 싹을 틔우는 식물의 본성에 더 가깝다. 땅속 어두운 곳에서 잘 버티고 견디고 싹을 틔워야 꽃을 피울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수많은 유명인은 울부짖는다. ‘우리도 인간’이라며 ‘무심코 던진 당신의 돌에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프레임이 있다. 감독의 의도대로 보여주는 장면에만 시선이 고착되어 프레임 밖 사건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닫힌 형식이 있다. 보여주고 싶은 인물 캐릭터와 디자인을 고도의 기술로 의도를 가지고 프레임 안에 설정한다.

반면 프레임이란 틀을 의식하지 않고 프레임 밖을 향하여 연속적으로 시선이 흘러가게 하는 열린 형식도 있다. 물론 언론은 철저하게 닫힌 형식의 프레임이다. 매일 수없는 이슈를 터뜨리는 미디어 뉴스는 철저하게 닫혀있다. 그렇기에 어떤 이슈를 대할 때,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려 프레임 밖을 보려고 해야 나만의 ‘준거 틀’이 작동한다. 이러한 열린 형식에서는 프레임 밖 맥락이 더 커다란 세상을 보게 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슈를 접하면서 게임하듯이 문제를 풀려고 한다. ‘옳은가?’, ‘그른가?’ 유명인이라면 그 잣대는 더 가혹하다. 그래서 ‘그르다’는 답이 나오면, 인신공격은 물론이고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막말과 악플로 벌을 준다. 반면 유명인의 미담에는 찬사를 보내면서 상을 준다. 우린 너무도 오랫동안 잘못한 사람에겐 벌주고 잘한 사람에겐 상 주는 것에 익숙하다. 마치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면 같이 쓰레기를 버리고 깨진 유리창에 돌을 던지듯이 그렇게 익숙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 쌓이는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고 그 자리에 예쁜 꽃을 심었다. 그 후 그 자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을 곧바로 새 유리창으로 끼워 넣으면 돌 던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극적인 언론 프레임을 열린 형식으로 바꿔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맥락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프레임이 해체되는 순간, 사이버 대지 위에서 별보다 더 빛나는 흔들리며 피는 꽃들이 보일 것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가 매일 숨 쉬며 소통하는 소중한 사이버 대지가 있습니다. 그 곳을 수많은 사람이 매일 수시로 방문해 소통하며 살아가지요. 만약 ‘대지가 어머니’라고 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늘 이 사이버 대지를 찾아온다면 무엇을 먼저 할까요? 어떻게 사이버 대지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맺고, 우주적 형제애를 이루면서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갈까요?

“미움이 있는 사이버 대지 위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네티즌에게 용서를, 분열이 있는 SNS 공간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디지털 세상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과잉정보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소식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사이버 대지 위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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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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