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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무조건 옳은 이유

[월간 꿈 CUM] 삶과 영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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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수용의 대상으로 봅니다. 판단을 하려면 기준이 정해져야 하고, 그 기준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 옳고(正) 그름(非), 혹은 좋고(善) 나쁨(惡)이 결정됩니다. 만일 감정이 판단의 대상이라면 판단을 위한 기준이 정해져야 하고, 그 기준에 맞춰 옳은 감정과 그른 감정, 혹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결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고 수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현상 이후에 발생하는 어떤 결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감정을 일으키는 어떤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생각과 사고로 이해합니다. 긍정적 생각의 결과는 긍정적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부정적 생각은 부정적 감정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감정에 판단의 기준을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하거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정은 생각의 자연스런 결과이기 때문에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불이 난 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추울 때 피우는 ‘모닥불’은 좋고, 집에 난 ‘화재’는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불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산소가 있는 가운데 탈 수 있는 물질이 일정한 온도(발화점)를 만나게 되면 불이 발생합니다. 이때 불은 “옳고, 그르다” 혹은 “좋고,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불이 일어난 것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할 뿐입니다. 감정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서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라는 말은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좋고 나쁜 감정은 없고 오직 기능하거나 기능하지 않는 감정이 있을 뿐입니다. 이때 ‘기능성’은 ‘선의 지향성’이라는 기준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생명과 인권의 존중, 정의와 평화의 실현, 치유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데 기여하는 감정(기능하는 감정)과 기여하지 않는 감정(역기능적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노는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아닙니다. 분노가 사회정의를 이루는 기능적 감정일 수도 있고, 반대로 서로를 갈라 놓는 역기능적 감정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떤 분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 증오, 시기, 질투, 교만, 무시, 그리고 수치심 등과 같은, 우리가 흔히 안 좋은 감정 혹은 죄의 원인이 되는 감정 등도 무조건 판단하지 말라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원리는 같습니다.

아무리 안 좋게 느껴지는 감정도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나쁜 감정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무조건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만일 감정을 수용하지 않고 억누르거나 억지로 회피하게 되면 오히려 그 감정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감정은 생각이라는 선행조건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감정 자체를 억압하거나 통제함으로써 결코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이 나지 않게 하려면 불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이미 일어난 불을 아무리 효과적으로 끈다 하더라도 영원히 원하지 않는 화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는 감정을 피하고 싶다면 그 감정이 일어나게 만드는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감정과 달리 생각은 합리적이며 윤리적 기준을 두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통제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원하지 않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으면 자신의 생각을 합리적 기준을 통해 평가하고 윤리적 기준을 통해 훈련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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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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