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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는 ‘제대로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의미 아닐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77. 똑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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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평협이 진행한 ‘똑바로 운동’ 선포식에 앞서 김옥균(1925~2010) 주교와 평협 임원들이 서울대교구청 마당에서 차량에 ‘똑바로 운동’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똑바로’란 말이 있다.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똑’,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바로’란 뜻으로, 비뚤어지지 않은 곧음을 말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바르게’ ‘곧게’라는 엄중한 의미의 ‘똑바름’이 무언가를 명령하거나 다그칠 때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똑바로 하세요!”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요” “똑바로 일하고 있느냐고요?” ‘똑바로’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현장, 바로 국회가 아닐까 싶다.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일 때면 어김없이 서로 손가락질하고 호통을 치면서 ‘똑바로’를 외친다. 그리곤 “국민들이 보고 있어요” “예의를 갖추세요”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아마도 국회의원을 가장 떨게 하는 것은 카메라일 것이다.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침착과 인내의 모습으로 ‘똑바름’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똑바로는 ‘올곧게 선다’는 말이다. 머리는 하늘로 향하여 마음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몸은 올곧은 선택을 한다. 시선은 카메라도 타인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을 바라본다. 똑바로(upright)는 또한 정직함과 선함이란 뜻이기도 하다. 정직함과 선함은 자신을 아는 데서 오는 결과다. 그러나 상황을 통제하는 카메라에는 사유나 성찰의 과정이 아닌 보여주기 식의 ’똑바름’을 연출한다. 거기에는 ‘네 탓’ 공방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똑바른’ 인물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사람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지식인이고 점잖고 품격까지 갖추며 ‘똑바로’ 살아간다. 마치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절제하고, 단식하고, 선행을 베푸는 똑바른 모습을 잘 연출해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스승님’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하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정말 괜찮은 똑바른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동시에 똑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사정없이 손가락질하며 ‘네 탓’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합의하는 과정보다 드러난 성과물을 보여주고, 양심보다는 타인의 좋은 평가에 기대고, 행동에 대한 책임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에게 예수님 역시 똑바르지 않은, 단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안식일을 지키고, 죄인들을 멀리하고, 단식하라며 호통치며 손가락질을 한다. 아마도 오늘의 국회 청문회처럼 얼굴을 붉히고 욕설과 고성이 오가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마태 23,27)면서 똑바름을 위장한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신다.

스스로를 똑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못 견뎌 한다. 바리사이는 주님 앞에서 그야말로 비뚤어지지 않고 정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듯 똑바로 ‘꼿꼿이’ 서서 기도한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질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 이에 세리는 멀찍이 서서 “고개는 하늘을 향하여” 그러나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고백한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똑바름’은 머리가 카메라나 남의 시선이 아닌 하늘로 향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리사이는 똑바로 꼿꼿하게 서 있었지만 고개는 하늘이 아닌 ‘남’(세리)에게 가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똑바름을 과시하다 보니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남에게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세리는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우러러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신의 양심을 바라보면서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가슴을 친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대중을 의식하는 정치인이나 남들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똑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친다. 하지만 정작 하느님이 선택한 똑바른 사람은 서민들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뛰는 정치인이나, 가슴을 치며 용서를 구하는 세리일 것이다. ‘똑바로’가 남을 힐난하거나 꾸짖으면서 보여주기 식의 폭력적인 언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미디어의 창에서 마이크를 잡고 머리를 카메라로 향하여 ‘네 탓’을 외치는 ‘똑바름’은 똑바르지 않다.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가슴을 치며 ‘내 탓’을 고백하는 정직한 ‘똑바른’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오래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똑바로’라는 운동을 선포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에서 올곧은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하도록 촉구했었지요.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똑바로’는 어디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곧게 서다’(straight)라는 뜻입니다. 비뚤어지지 않고 곧게 바르게 서야 합니다. 직각으로 일어서(standing) 있음을 의미하는데요. 그리스어로 ‘스타우로스’(stauros)라는 말이 바로 일어서다는 뜻의 sta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이 말은 바로 ‘십자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똑바로 선 막대기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똑바로’라는 말은 단호하게 제대로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는 하늘을 향하여, 시선은 나의 내면을 향하여, 그렇게 정직하게 ‘내 탓’을 성찰하는 ‘똑바름’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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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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