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쟁으로 찾아가기 어렵지만,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빠지지 않는 순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시온산, 최후의 만찬 성당 옆에 자리하고 있는 ‘성모 영면 성당’입니다.
성모 영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원뿔형 지붕과 지붕을 둘러싼 네 개의 작은 탑이 인상적인 건물이지요. 그리고 성당 내부에는 석관이 있는데요. 석관 위에는 실제 사람 크기로 두 손을 모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의 성모님이 조각돼 있습니다. 영면하신 성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입니다.
이쯤 오니 번뜩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하늘로 불러올리셨다고 믿고 있는데 어째서 성모님이 영원히 잠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성당이 있고, 또 우리는 그 성당을 순례하고 있는 걸까요?
일단 왜 성모 승천이 아니라 성모 영면(Dormitio)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는지를 살펴야겠습니다.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거행하게 된 것은 1950년부터지만, 실은 8월 15일은 성모님의 축일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축일 중 하나입니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끝난 후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축일’로 지냈고, 성모 신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당시 성모님의 마지막에 관한 다양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었는데요. 돌아가신 성모님을 무덤으로 옮기던 중 성모님께서 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 죽은 지 3일 후에 부활해 승천했다는 이야기, 죽지 않고 바로 승천했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승천하셨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승천하셨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가운데 예루살렘 신자들은 성모님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장소를 찾아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8월 15일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축일’의 이름도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영면(죽음) 축일’로 변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8월 15일을 성모 영면 축일로 지내오다 8세기경 ‘승천’이란 말을 사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다시 성모 영면 성당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모 영면 성당에 있는 석관은 비어 있는 석관입니다. 교회는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다”고 고백합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59항)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도 하늘로 불러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모 영면 성당의 빈 무덤은 성모님의 육신이 지상에 남아 있지 않고, 승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하늘로 불러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언젠가 무덤에 묻히겠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 우리의 무덤도 성모님의 무덤처럼 빈 무덤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