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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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일상 챙기려면 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82.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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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관음적 요소를 자극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처=pixabay


철저하게 계획된 각본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무대 세트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면서 ‘리얼’을 욕망하는 대중에 의해 그의 단 하나뿐인 인생은 ‘쇼’로 소비된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주변의 모든 사람은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배우들이고 그가 진짜라고 믿었던 자신의 일상도 제작팀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연출가의 치밀한 대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단 한 사람, 바로 트루먼 버뱅크뿐이다. 너무도 유명한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주인공 이름은 ‘진실한 사람(true man)’이다. 하지만 의도적인 접근, 인위적인 세팅, 진짜처럼 보이는 기술조작에 의해 트루먼은 쇼의 주인공으로 관음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해가 갈수록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능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알 수 없는 장르 파괴의 ‘쇼’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예능의 다큐화로 관찰 형식의 수많은 프로그램은 유명 유튜버나 연예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게 한다.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 강의 듣고 운동하고 캠핑 가고 쇼핑하고 해외여행까지 관음적 요소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쇼’에 ‘리얼’을 옷 입힌 리얼리티쇼(reality show)는 기존의 텔레비전 장르인 드라마·코미디·스포츠 등의 예능 요소가 고루 혼합되어 오락성을 자극하는 종합선물이다. ‘리얼’하다고 믿으니 그 재미는 배가된다. 사실적인 요소는 바로 옆에서 바라보는 엿보기 욕망을 채워준다. 그런데 정말 ‘리얼’일까? 영화에서 트루먼은 자신도 모르게 관음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가 매일 보는 다큐 형식의 예능프로그램 주연은 드러나게 ‘리얼’을 옷 입고 ‘쇼’를 진행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제 현실이나 가상현실보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더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증강 현실은 현실이라는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넣어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실제만으로는 지루하고 가상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나 보다. 진짜와 가상의 변형과 합성으로 인위적인 실재감을 높여주는 혼합현실(mixed reality)에 더 매력을 느낀다.

현실 세상에서는 길을 잃고, 만들어진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세상에 열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된다.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버티기보다는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을 틈만 나면 훔쳐보면서 즐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나의 진짜 일상에 남의 가짜 일상을 끌어들여 마치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대리 만족의 달콤함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특정인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뇌 속의 거울 뉴런은 활발하게 작동한다. 스크린 속 인물과 동일시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마치 내가 보는 대로 행동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보는 것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자주 혹은 매일 ‘리얼’에 예능을 옷 입힌 ‘다큐 형식’에서 오락적인 감성을 키워간다. ‘리얼리티’를 소비하면서 ‘쇼’에 갇혀 일상을 즐긴다. 부풀려진 진짜 같은 재미 감각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면 밋밋하고 지루해서 곧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진짜 삶은 느리고 재미도 없고 문제 해결은 더디기만 하고 밋밋하다. 반면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은 어찌 그리도 재미있고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문제 해결도 잘하면서 톡톡 튀고 흥미로운지 모르겠다.

진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트루맨(true man)의 감각은 무뎌지고 남의 세상을 엿보는 대중으로서의 감각에 자극받으면서 점점 우리 영혼은 침식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일상을 남의 일상 훔쳐보기로 채워간다면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을 오락처럼 즐기는 시간을 줄이고 나의 진짜 일상을 챙겨야겠다. 심심할 때, 지루할 때, 밋밋할 때,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가야겠다. 지하철만 타면 습관처럼 열어보는 스마트폰을 가방 깊이 넣어두고,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또 어떤가?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반갑고 기쁘다.



<영성이 묻는 안부>

가끔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가만히 관찰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들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 않나요? 정치적 현안은 물론이고 올림픽 이야기도 그렇고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요.

그런데요. 또 그만큼 나에 관한 이야기나 내가 실제로 경험한 직장 동료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할까요? 내가 읽은 책이나 성경 말씀을 나누시나요? 우리가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대체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서 본 뉴스나 자극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지요. 직접 보고 들은 것도 아니면서 우린 그냥 ‘리얼’이라고 믿습니다. 가끔은 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화는 곧 우리 내면의 풍경이며 인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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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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