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수도원 일기 (13)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기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를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잘 구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도원에는 여러 지방 출신들이 많아서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강원도 사투리도 잘 알아듣고 곧잘 흉내도 낸다.
하지만 제주도의 상황은 달랐다. 수도원에 제주 출신 수사님이 안 계실뿐더러, 제주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제주도 방언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고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몇마디 정도 할 수 있지만 처음 제주에 왔을 때에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특히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제대로 된 제주 방언을 구사하실 때는 어디 외국에 와서 외국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았다. 제주 방언을 심하게 쓰지 않는 젊은 사람들의 말은 웬만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어르신들은 정말 오리지널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어르신들의 말씀을 알아듣고 싶었고, 또 외지 사람이 제주 방언을 쓰면 다들 좋아하시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였다. 무는 놈삐, 감자는 지실, 문어는 뭉개, 그러니까라는 접속사는 게, 많다는 말은 하영, 빨리빨리는 재기재기, 귀엽다라는 말은 아꼽다 등등 정말 배워야 할 방언들이 많았다.
열심히 공부하여 이제는 좀 제주 방언을 알아듣겠다 싶을 즈음, 부활 판공성사를 도와드리러 인근의 본당에 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고해성사를 하였는데, 대부분 제주 방언을 심하게 쓰지 않아서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외지에서 온 신부라서 방언을 자제하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처음부터 제주 방언을 마구 쏟아내시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에고, 신부님, 이젠 다 골았수다” 하시며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아직 정정하신 것 같아 “다 곯았다니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위로했지만 할머니는 계속 “다 골았다”고 우기셨다.
할 수 없이 사죄경을 드리고 보내드린 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다 골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더니 “다 말했다”라는 뜻이란다.
모든 죄를 다 고백했다고 하신 할머니께 “그렇지 않아요”라고 했으니 할머니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