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23)
나이 54세. 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20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다. 무엇보다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남은 인생을 빚더미에 눌려 살아야 한다는 나락의 정중앙에서 그녀는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우울증 때문에 6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 보니 신발 위에 먼지가 하얗게 쌓였더군요.”
‘신발 위에 쌓인 먼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좌절과 고통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마태오 복음 15장 21-28절에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성이 예수님께 매달렸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응답은 곧바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자 여인이 더욱 간절히 애원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감탄사를 터뜨린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 순간 여인의 소망은 이뤄졌다.
여인은 자신의 상황을 인정했다. 스스로 극한까지 낮췄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자신을 ‘개’라고 함으로써 해방된 ‘인간’으로 격상됐다. 이처럼, 지친 삶을 칼로 대쪽 자르듯 돌파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전적으로 낮아지는 겸손,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서 나온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전부라고 단언하지 말자. 인간의 오감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 번개 친 후 천둥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번개 먼저, 천둥 나중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를 본 후, 팔이 부러졌다고 해서 검은 고양이가 불행의 씨앗인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우울하게 주저앉아 눈물 흘리지 말자. 중세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예수 탄생 환희의 들뜸 뒤에 십자가 피눈물이 있고, 그 눈물 뒤에야 마침내 부활의 영광이 따라온다.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에 신비다. 환희의 신비이고, 고통의 신비이고, 영광의 신비이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감기처럼 자잘한 고통을 항상 달고 산다. 실내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다. 신선한 공기를 폐에 듬뿍 넣어주면, 이 지긋지긋한 감기(고통)도 떨어질지 모른다. 현관에 놓인 신발 위에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그래! 밖으로 나가자. 신발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야겠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