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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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기도 이야기] 햇곡식을 바치며 올리는 기도 (레위 23,9-14;신명 8,7-10;2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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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이 지나고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 왔습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던 우리 민족은 가을 추수를 끝내기 전에 함께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을 차려 조상께 감사드리는 추석을 지내왔습니다. 성경 안에도 햇곡식을 바치는 축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레위 23,9-14) 레위기는 책 전반에서 제물과 제사와 축제를 자세히 규정하는데, 그 안에서 기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제물의 봉헌은 피를 뿌리거나 제물을 태우거나 흔들면서 침묵 중에 이루어졌으리라 추측됩니다.


하지만 모든 수확의 맏물을 담은 광주리를 갖다 바치며 하는 기도를 소개하는 신명기 26장은 예외를 보여줍니다. 맏물을 바치는 이들은 우선 사제에게 “주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가 들어왔음을, 오늘 주 당신의 하느님께 아룁니다”(신명 26,3)라고 말합니다. 이어 광주리를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놓으면서 자기 민족의 역사를 회상하는 신앙고백을 합니다.(26,5-9) 끝으로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26,10) 이어 그것을 하느님 앞에 놓고 그분을 경배하며, 레위인과 이방인과 더불어, 즉 하늘과 땅의 모든 이와 더불어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약속과 그의 성취를 고백합니다. 모세는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신명 8,7-10)라고 예견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확의 맏물을 봉헌하면서 잔치를 벌이는 것 자체가 하느님 약속의 성취에 대한 확인입니다. 이 기도에서 인간 노력의 결실이 단순히 인간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약속과 성취라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포괄되면서 영원한 가치를 얻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하느님의 뜻과 연결될 때 그것은 헛되이 지나갈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서 서 있을 것입니다.


식사 전 기도를 생각해 볼까요?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매우 간단한 기도이지만, 자기가 차리든 남이 차리든, 비싼 돈을 내고 먹든 얻어먹든, 배고픔을 달래고 힘을 얻는 매 식사가 이 기도를 통해 영적인 차원을 얻고 덧없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감사 기도를 통해 또한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건강한 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새빠지게 일해 모은 것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자신 안에 고립된 생각은 우리를 타인으로부터 또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감사 기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선하심을 상기시키고 타인에 대한 의무를 일깨우며 우리를 우리가 가진 것의 소유주가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루는 관리자로 만듭니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고백(26,5-9)은 선택된 백성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에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신앙고백을 작성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분의 이끄심을 고백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면, 어떤 처지든 현재를 수용하고 미래를 그분에 대한 신뢰 속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때에 선사하셨습니다. 땅에서는 영원에서든 모든 것은 그분의 선하심으로 살아갑니다.”(안톨 베젤리, 오스트리아 신부)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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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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