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전례는 혼인의 신성함을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염려가 됐습니다. 혼인에 실패하였고 도무지 현실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끼게 하거나, 이해심이 부족한 종교가 원망스럽다며 하느님과 교회를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말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취지는 더 깊은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생명의 본질을 일깨워주시는 예수님의 태도와 대조를 이룹니다.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는 계명을 남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버림받아 혼자 된 여자가 생존을 위해 다른 남자와 생활을 하게 됐을 때, 전남편이 간통으로 고발하면 죽게 되던 폐해에서 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내린 조치였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모세는 완고한 인간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인간이 갈라놓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소중한 존재인 배우자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혼인이라는 제도에 국한해서 듣기보다는 더욱 본질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들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다는 점(히브 2,11 참조)에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아예 언어도 생각도 배우지 못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가 인간의 그런 특성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삼라만상 가운데서도 마주할 상대가 없는 아담은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몸에서 갈비뼈를 꺼내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동화적인 요소보다 이 이야기의 본질에 몰두해 본다면,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이 한 분에게서 나온 존재로서 주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인은 그런 일치를 몸소 체험하는 현장이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태초부터 계획하신 구체적인 인간 생명체(자녀)의 탄생을 바로 혼인을 통해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혹여 자녀가 없어도 혼인에서 일치를 체험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혼인에 실패했거나 사별한 분, 미혼으로 생을 마감한 분, 성직자와 수도자 등을 가리지 않으며, 우리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삶 안에서 그 실천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소외시키거나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시하지도, 증오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맘에 드는 사람이든 불편한 사람이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이라 여기며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나를 참아주시는 우리 모두의 뿌리인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