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첫째 서간(이하 베드로 1서)은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의 5개 속주, 곧 북부 흑해 변의 폰토스·중부 지방의 갈라티아·동부의 카파도키아·서부의 아시아·북부 폰토스의 서쪽 지방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 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흩어져’라는 말은 헬라어로 ‘διασποραs(디아스포라)’라 하는데 이 단어는 ‘팔레스티나 땅 밖에 사는 유다인’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베드로 1서는 얼른 보면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서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2,11)이란 말에 주목하면 비유다계 그리스도인도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1서는 소아시아 지역 그리스도인 공동체 곧 유다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보낸 사목 서간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베드로 1서를 ‘가톨릭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베드로 1서는 글쓴이가 교회 원로이며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5,1)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1,1)라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실바누스가 이 서간을 받아썼고, 마르코가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5,12-13) 베드로의 둘째 서간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2베드 3,1)
하지만 다수의 성경학자는 이 서간의 저자가 베드로 사도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로 첫째, 베드로 사도는 이스라엘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 어부로 아람어를 사용했기에 헬라어에 능통하지 않다는 점. 둘째, 이 서간을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의 5개 속주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냈는데 베드로 사도가 이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을 그대로 수용할 만한 이유도 딱히 부족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헬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실바누스에게 받아쓰게 했고, 예수님과 사도 시대 당시 갈릴래아 지방에서도 헬라어가 통용됐기에 베드로 사도가 전혀 헬라어를 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베드로 1서에 나오는 소아시아 5개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들이 세운 신앙 공동체이긴 합니다만 베드로 사도가 소아시아에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서간을 쓰지 않았다고 결정적으로 제시하는 논거는 베드로 1서에 글쓴이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 직접 그분과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 1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서술할 뿐 ‘하느님 나라’나 ‘사람의 아들’처럼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1,8)는 요한 복음서 20장 29절을,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2,2)는 한 마르코 복음서 10장 15절을,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2,12)는 마태오 복음서 5장 16절의 예수님 말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베드로 사도가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기 직전에 자신의 구술을 근거로 실바누스에게 신자들을 격려하는 회람 서신을 보낼 것을 부탁했고,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얼마 뒤인 70~80년 사이 베드로 1서가 집필됐을 것으로 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ετρου Α(페트로 알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Petri 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베드로의 첫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베드로 1서는 5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인과 노예의 처신(2,18-25)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서간을 받은 소아시아 5개 교회 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사회 신분이 낮은 자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1서는 다섯 가지 권고로 내용을 이룹니다. 먼저 이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생활 방식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그리스도께 희망을 품고 영적 성전의 한 부분이 되라고 촉구합니다.(1,13─2,10) 이어 이교인들 사이에 취해야 할 처신과 함께 신자들의 의무, 국가 권력에 대한 의무, 주인에 대한 종의 의무, 부부 사이의 의무를 제시하며 형제적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당부합니다.(2,11─3,12)
아울러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본보기를 실천하기 위해 죄와 단절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랑과 봉사로 신앙 공동체 생활에 충실할 것을 권면합니다.(3,13─4,11) 그리고 임박한 박해에 대해 선을 행하면서 자기 영혼을 성실하게 창조주께 맡기라고 합니다.(4,12-19) 마지막으로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고 모범이 될 것과 젊은이들에게 겸손하고 깨어있길 권고합니다.(5,1-11)
베드로 1서는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하는 사명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하느님을 위한 봉사는 먼저 교회 안에서 실행돼야 하며 가정과 사회 안에서도 실천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 따르고 복음을 선포하며 주님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