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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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

[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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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교회를 살아있는 몸에 비유한다. 교회가 살아있는 몸이라는 사실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머리와 각 지체의 구별된 기능과 역할을 드러낸다. 더 중요한 것은 지체들의 고유하면서도 각별한 기능들에 대한 존중이다. 머리는 물론이요 손 발 어느 것 하나라도 없이는 온전한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다 할 수 없다. 지체들의 유기적인 협력과 조화도 중요하다. 이 모든 역할과 기능을 아우르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교회는 신비다. 

느닷없이 ‘교회’ 운운한 것은 한 지인의 딱한 사정 때문이다. 수도자가 수장(首長)으로 있는 기관에서 일하던 그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가끔 듣던 터다. 동반 퇴직한 이도 있다는 둥 들리는 얘기가 심상찮다. 문제는 그 일로 한동안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조카뻘인 그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 탓이라 여긴다. 그런데 영 찜찜한 게 가시질 않는다. 내막이 궁금하다. 그게 무슨 대수랴. 대신 그에게 글 한 토막을 보냈다.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다. 그런 교회에 용서를 구할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하고 있다. 교회를 ‘저기 어디에’ 있는 ‘무엇’으로 보지 말고, 우리를 포함하여 모자라고 나약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비틀거리는 공동체로, 그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장소로 봐야 한다”(헨리 나웬, 「나그네를 위한 양식」 중에서).  

이런 글도 덧붙였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 교회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해 왔다. 그것은 교회가 수차례 탈선할 경우 비판을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당황하지 말고 결정적인 고마움을 가진 채 교회의 과거를 떠맡는 것이고, 확실한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러나 결국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교회의 현재에 참여하는 것이며, 온전히 진지하게 그리고 책임있게 그리고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황폐감을 가지면서도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는 가운데 교회의 미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다.”(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세계 신학을 향하여」 중에서)

운좋게 눈에 띈 글들이 얼마나 위로가 될른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원한 차라도 한잔 나누며 상한 마음을 달래줘야겠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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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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