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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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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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테살로니카

 


Q. 테살로니카 1서는 어떤 편지입니까?

A. 테살로니카 1서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쓰여진 서간입니다. 따라서 이 서간은 신약성경 27권 중에서도 제일 처음에 기록된 문서인 셈입니다. 테살로니카는 오늘날 그리스 북부에 있는 도시로서, 사도 바오로가 2차 선교여행 때 필리피로부터 테살로니카에 이르러(1테살 2,2) 거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코린토에서 발송된 서간이며 대체로 서기 50~51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Q. 테살로니카 교회 구성원들은 누구입니까?

A. 테살로니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교우들은 그리스-로마 신(神)을 섬기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입니다.

Q. 테살로니카 1서는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A.
① 1,1-2 : 서문
② 1,3-10 : 감사의 글 
③ 2,1-5,24 : 본문 
④ 5,25-28 : 마지막 인사

Q. 테살로니카 1서가 쓰여진 동기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A. 테살로니카 1서가 쓰여진 동기와 목적은 박해문제, 재림 지연 문제, 교우들의 그릇된 행동입니다.

Q. 재림의 원 의미와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A. 재림’(再臨)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루시아’(parousia)란 말은 ‘도착’의 의미로, 특히 신(神)이나 왕의 도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기쁨, 설렘, 긴장과 함께하는 기다림입니다. 중요한 인물이 방문하니 반가움을 갖고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 단어를 취해서 주님의 재림에 사용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기쁨과 설렘으로 이제나저제나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시지만, 신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구원입니다.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까?

“마라나타! 오십시오, 주 예수님!”(1코린 16,22; 묵시 22,20)

Q. 테살로니카 교회 교우들이 받은 박해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A. 박해의 원인은 이교도 신앙을 버리고 새롭게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테살로니카 교우들이 받아들인 새로운 믿음으로 인해 자기 동족들과의 단절, 문화적·관습적 단절,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동료 비신자들과 단절되었습니다. 테살로니카 교우들이 혈연관계, 사회적 관계를 다 끊어 버리고 자기들만의 배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자 주위 이방인들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로 보아 박해하였습니다. 이에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보내어 박해 중에 동요하지 말고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1테살 3,2-3)

Q.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난 재림 지연의 문제란 무엇입니까?

A.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재림할 것임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보기도 전에 주변의 동료 교우들이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떠오른 질문은 ‘죽어버린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는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죽어 버린 형제들이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종말복락의 영광을 누릴 수 없다고 보고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또 살아 있는 자기들도 주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지금의 이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죽은 이들은 예수님 재림 시(時)에 어떻게 될 것이며, 예수님은 언제 재림할 것인지. 사도 바오로는 1테살 4,14-16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죽은자 들이라 하더라도 재림 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또 1테살 5,1-11에서 재림 시기는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깨어 기다려야 한다고 사도 바오로는 대답합니다.

Q.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난 도덕적 삶에 대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A. 종말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던 종말론 열광론자들은 현실의 책임과 윤리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임박한 재림 안에서 테살로니카 교우들 중 일부는 일상적 삶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종말이 곧 올 것이기에 일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에 의존한 것입니다.(1테살 4,11-12)

사도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손으로 일해 충당하며, 조용히 살고, 자기 자신의 일에나 신경 쓰도록 권고합니다.(1테살 4,11-12), 또한 하느님의 뜻은 음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1테살 4,3.7)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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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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