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초 바치던 성탄 전 9일 기도에서 유래
특별한 은총 필요할 때 바쳐
어떤 지향을 두고 묵주 기도를 할 때 많은 분들이 ‘구일기도’를 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구일기도를 바치는 분들을 보면 기도를 시작한 지 9일이 지나도, 19일이 지나도, 29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계속 ‘구일기도 바치는 중’이시지요. 구일기도면 9일 동안 하는 기도인데 왜 끝나지 않는 걸까요? 실은 구일이 아흐레를 뜻하는 말이 아닌 걸까요?
구일기도의 구일은 아홉 날,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아흐레를 뜻하는 말이 맞습니다. 서양에서는 라틴어로 9를 뜻하는 노벰(novem)을 따서 노베나(novena)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숫자 9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을 상징하는 수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 신약의 열 달란트, 열 처녀의 비유 등에서 알 수 있듯이 10은 완전함을 상징했는데요. 그래서 신자들은 10을 향해가는 9에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느님을 향한다는 의미로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강림에 얽힌 9일이 구일기도의 가장 직접적인 유래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열흘째에 성령께서 오셨는데요. 제자들이 기도하며 기다린 기간이 9일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이 9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큰 축일 전이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할 때 9일에 걸쳐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특히 중세 초기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성탄 전에 9일 기도를 바친 것이 널리 퍼지면서 대중적인 신심 행위가 됐습니다.
구일기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9일에 걸쳐 정해진 기도를 바치거나, 미사와 영성체를 하는 것인데요. 매일 바쳐서 9일을 기도하거나,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9주간 기도하는 방식도 있고, 9일 간의 기도를 연속으로 여러 번 바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인 구일기도는 9일 동안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는 형식의 기도인데요. 9일 동안만 기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청원을 드리는 구일기도를 3차례(27일), 감사를 드리는 구일기도를 3차례(27일) 바쳐서 모두 54일 동안 구일기도를 바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빛의 신비가 제정되기 전에는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를 돌아가면서 9일 동안 바쳐 각 신비를 3번씩 바쳤습니다. 이렇게 구일기도를 3번하면 신비들을 각각 9번씩 바치는 셈이었지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특별히 주님께 청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구일기도를 바치곤 하는데요. 어떤 분은 9일 중 하루를 빼먹으면 청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식의 말씀을 하곤 하십니다. 그러나 구일기도는 조건을 갖추면 반드시 이뤄지는 마법도 아니거니와 ‘소원 자판기’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공동번역 루카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