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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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탁월한 선택은 ‘책 읽기’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89. 등화가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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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 속 언어의 매개를 통해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을 만난다. 언어로 재창조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인식도 태어난다. 출처=pixabay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난 무엇을 할까? 무엇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김현승 시인은 시 ‘책’에서 이럴 때 “책을 연다”고 한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그리고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 듯” 그렇게 소중하게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편다’는 것이다.

책에는 ‘행복을 노래하고 간’ 친구들이 있고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집”, “높은 정신의 성”, 그리고 “거룩한 영혼의 무덤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영혼들의 일생이 묻혀있는 무덤, 바로 책이다. 마음 한편이 시리고 외롭고 우울할 때가 있다. 구멍 난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면 왠지 공허해진다. 그때 펼치는 책 속의 활자에서 숨이 트고 싹이 돋는다. 그리고 슬프지만 기쁜,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영혼들을 만난다. 썩어도 “썩지 않는 영혼들”이 나의 슬픔과 괴로움을 희망으로 노래해 준다.

예로부터 가을은 ‘등화가친(燈火可親)’ 계절이라고 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고 상쾌해서 저녁에는 등불을 가까이하며 글을 읽기에 좋다는 말이다. 유사한 의미의 사자성어인 ‘신랑등화(新凉燈火)’,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고 늘 글을 읽는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사성어는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수불석권’이 아닌 ‘수불석폰(手不釋Phone)’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니 말이다. 누군가 ‘한국인의 하루 독서시간이 평균 8분, 하루 화장실 들락거리는 시간도 안 되며 감기 걸린 날 코 푸는 데 드는 시간 정도’라며 한탄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한글을 겨우 깨친 나의 어머니는 신심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책을 열심히 읽으셨다. 옛 사진들을 보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얼굴이 유독 빛나기 시작했던 시점을 찾아냈다. 바로 본당 신심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부터다. 그리고 독서를 제대로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평생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유 없이 살다 그나마 노후에 ‘신심생활’을 하면서 ‘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글을 열심히 따라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노인이 읽기에 쉽지 않은 신심 서적을 읽으면서도 “재미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던 어머니의 표정은 참으로 행복해보였다. 책 읽기를 통해 평생을 살아도 만날 수 없는 수많은 빛나는 영혼들을 만났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책 속 언어를 매개로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을 만난다. 언어로 재창조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인식도 태어난다. 인식은 사물을 인지해 식별하면서 사고하고 기억하는 마음의 활동이다. 이 인식은 생각을 창조하고 그 과정을 관찰하는 의식을 확장케 한다.

이 의식은 어디서 올까? ‘마음’은 뇌가 살아서 의식을 촉진할 때 작동한다고 한다. 의식 안에서 마음을 만들어간다. 마음속에서 감각정보를 변형하고 정교화 혹은 단순화하면서 저장하고 인출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많은 신경학자들이 ‘마음’은 ‘뇌’에 있다고 한다. 그들은 뇌를 다스리면 마음도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마다 마음이 다른 것일까? 학자들은 물려받은 유전자에 코딩된 정보의 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을 움직이는 뇌 속에 100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이를 통제 가능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라고 한다. 독서는 새로운 뉴런 네트워크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존 네트워크와 협공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생산해낸다.

생화학자인 조 디스펜자는 “뉴런들 사이의 정보소통이 늘어나면 지적능력이 높아지고 생명체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독서 행위는 지식습득만이 아닌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향한 놀라운 창조과정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탁월한 선택 중 하나가 ‘책 읽기’일 것이다.

고요한 밤하늘에서 별을 헤듯 설레는 마음으로 책 한 권 펼치는 가을이다. ‘거룩한 영혼의 무덤’인 책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영혼을 만나는 ‘등화가친’의 계절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영성이 묻는 안부>

책을 읽어야겠어요. 책 읽기는 평생 해야 할 수련이고 기도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수녀원 일정표에는 ‘영적 독서’ 시간이 있습니다. 회헌에도 의무적으로 독서를 하도록 명시되어있고요. 그만큼 영적생활에서 책 읽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그런데 책 읽기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쉽지는 않아요.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시대 감각도 떨어지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책을 놓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책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알츠하이머 질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몸 건강을 위해 걷기를 한다면 뇌 건강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도 교회에서 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만이라도 놓치지 않고 읽었으면 합니다. 독서는 즐거운 신심생활을 위한 필수 활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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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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