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의 쇄신과 증진에서는 온 백성의 완전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최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전례헌장」 14항)고 말한다. 이에 공의회 이후 성당 건축은 하느님 백성의 ‘능동적 참여’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갔다. 제1대리구 신봉동성당은 이런 전례의 능동적 참여가 돋보이는 성당이다.
■ 공동체의 참여로 지은 성당
신봉동성당을 방문해 본 일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스테인드글라스의 강렬한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제대 뒤편에 자리한 가로 9m, 세로 6m 규모의 유리화는 일반적인 스테인드글라스와 달리 납선이 없을 뿐 아니라 빨강·노랑·초록·파랑의 색조가 수묵화처럼 번져나가듯 자유롭게 펼쳐져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유럽에서 ‘빛의 화가’, ‘스테인드글라스의 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김인중 신부(베드로·도미니코 수도회)의 작품이다.
제대의 스테인드글라스만이 아니다. 제대 좌우로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가로 1m, 세로 6m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 12개와 세라믹으로 제작된 14처의 십자가의 길도 김 신부의 작품이다. 또 1층 로비의 성모상 위에도 직경 1m가량의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자리하는 등 건축면적 2210.07㎡에 4층 규모의 성당이 김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좌우로 긴 타원형의 성당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가 가깝게 보이도록 설계됐다. 신자석이 제대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듯 펼쳐져 있어 앞뒤가 긴 성당에 비해 제대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 게다가 기둥도 없도록 설계돼 제대를 바라보는데 장애가 없다.
앞뒤가 긴 일반적인 성당이 입구 반대편에 자리한 제대의 권위를 강하게 드러냈다면, 타원형 성당은 모든 이에게 열린 참여적인 공간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러나 공간에 기둥이 없고 타원형이라고 해서, 그저 제대가 가깝다는 것만으로 반드시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신봉동성당은 그렇다. 많은 성당들이 사목자나 일부 전문가들의 구상과 기획으로 세워지곤 하지만, 신봉동성당은 성당 건축 기획 단계에서부터 본당 공동체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08년 수지본당에서 분가해 신설된 신봉동본당은 새 성당을 짓고자 기획하는 단계에서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성당 건축에 어떤 지향을 두고자 하는지에 관한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중심으로 성당을 건축하자는 생각도 이 설문조사를 통해서 구체화됐다.
본당 신자들은 직접 프랑스를 찾아 김 신부를 만났다. 본당 공동체와 김 신부가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빛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위안을 얻는 성당을 만들고자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본당은 성당의 콘셉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김 신부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은 프랑스 건축가이자 신학자 베르나르 게일러 씨를 찾아 성당 디자인을 진행했고, 이를 건축으로 구현해 지금의 성당이 세워질 수 있었다.
■ 순교 신심으로 세계와 유대하는 성당
한 본당의 성당을 짓는데 기획과 설계 단계부터 국제적인 협력이 돋보였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를 통해 성당의 콘셉트와 스테인드글라스, 성미술을 구상했고, 프랑스의 건축설계사에서 성당 설계를 진행했다. 그러나 신봉동성당에는 그보다 의미 있는 국제적인 무엇이 있다. 바로 이미 200여 년 전 이 일대에서 사목하던 성 오매트르 베드로 신부를 통한 유대다.
프랑스 앙굴렘교구 출신인 오매트르 성인은 1863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봉동성당 인근 손골에 자리를 잡고 우리말을 익히며 신자들을 사목했다.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에 체포돼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인이다.
프랑스에서 우리나라에까지 와 주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교사. 신봉동성당은 오매트르 성인의 고향인 프랑스 앙굴렘교구 성 오매트르 베드로 성당과 연결돼 있다. 신봉동본당과 성 오매트르 베드로 본당이 2018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오매트르 성인의 정신을 함께 이어받으며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봉동성당 곳곳에서 오매트르 성인을 만날 수 있다. 성당 1층 외부에는 오매트르 성인의 동상이, 내부 로비에는 오매트르 성인의 이콘이 자리하고 있다. 본당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카페의 이름도 ‘카페 에제끄1837’이다. 에제크는 오매트르 성인의 고향 지명이고, 1837년은 오매트르 성인이 태어난 해다. 이처럼 성당에는 오매트르 성인의 선교정신을 계승하며 순교 신심을 고취시키려는 본당 신자들의 뜻이 가득 담겼다.
무엇보다 성당 감실 아래에는 오매트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체조배와 함께 순교자인 오매트르 성인의 유해를 공경할 수 있는 것이다. 오매트르 성인을 현양하는 손골성지가 성당 인근에 있어 함께 순례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