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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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3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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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일입니다. 매년 지내는 평신도 주일이 동료 평신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1980년에 세례를 받은 저는 한동안은 평신도 주일이 뭔지 모르고 그냥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매년 한 번씩 본당 사목회장이 강론 시간에 본당의 현황을 나누는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좀 더 알게 되고 교회 안에서 성장하면서 이날의 중요성에 비해 평신도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평신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태도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바라보시고 과부의 헌금이 갖는 의미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저는 율법학자의 태도와 과부의 봉헌을 통해 예수님이 말하시고자 하는 신앙인의 삶, 특히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일지 질문해 보았습니다.


복음에서 보이는 율법학자들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단죄합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옳음을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자신과 하느님의 가르침을 동일시하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인사받기 좋아하고 높은 자리, 윗자리에 앉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들이 무시하는 가난한 과부들의 가산마저 등쳐 먹으면서도 기도는 길게 합니다.


예수님이 보기에,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이 진정 어떤 분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런 율법학자의 모습은 종교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옳다는 것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믿고 숭배합니다.


이런 율법학자들에게 분노하신 예수님의 눈에 가난한 과부가 보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저주받은 삶을 산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남편을 여의고 도움받을 사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할 험한 일들, 다른 사람들의 멸시하는 듯한 시선이 존재하는 슬픔이 배어 있는 삶입니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원망이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가 헌금을 합니다. 그것도 생활비 전부를 다 넣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이런 봉헌은 어떤 마음에서 가능한 것인가요?


과부로서의 가난한 삶이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녀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하느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깊게 믿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현실의 삶이 비참하더라도 그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보는 듯합니다. 그녀에게 세상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생활비 모두를 봉헌하지 않았을까요?


평신도 주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인해 생긴 날입니다.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에 대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를 하면서 복음을 증거 해야 하고,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현대세계의 복음 선포의 주인공이라고 선언합니다.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정신에 맞게 살아감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과 사회적 활동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맞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께 삶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간혹 하느님께 삶을 봉헌하는 것을 교회 봉사만 하면서 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거나 기도와 성사 생활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삶은 평신도의 삶이 아니라 사제와 수도자로서 봉헌하는 길입니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부르심을 듣고 일상을 통해 삶을 봉헌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살고 있는 그 자리가 봉헌의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가 보여주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삶이 녹록지 않더라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비록 실패와 좌절을 겪더라도,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에게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은 결국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것임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이런 신앙의 여정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이 여정을 동반하는 공동체는 서로 기도해 주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우며 함께 성장하는 힘이 됩니다.


또다시 맞이한 평신도 주일입니다. 이날을 계기로 모든 신자가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의식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자신들의 삶 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평신도 주일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축제의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살아온 신자들이 1년 동안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애씀에 대해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한편으로는 성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평신도들이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선교 사명을 살아가는 교회의 전망을 활발하게 나누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그럴 때 많은 이가 평신도로 사는 삶의 의미를 배우고 우리 모두가 교회임을 공감하며 우리가 받은 사명과 새로운 전망 안에서 일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런 평신도 주일을 지속적으로 지내며 살아가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진정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글 _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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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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