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대희년 준비 기간 매우 상징적인 일련의 회의들을 통해서 다른 종교인들과 개방과 대화의 관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중략) 이러한 분위기에서 안전한 평화의 바탕을 확립하고, 흔히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였던 끔찍한 종교 전쟁들과 같은 참상을 피하려면 이러한 대화가 특히 중요하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의 이름은 점점 더 본래의 모습대로 평화의 이름, 평화에 대한 호소가 되어야 합니다.”(「새 천년기」 55항)
오늘날 운송 수단과 정보 통신의 발달과 교육과 생계를 위한 이주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한 마을을 이루듯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여러 민족과 종교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다문화 다종교 시대가 열렸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는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대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교가 서로 협력하여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만, 세계 각지에서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움과 폭력이 창궐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종교가 세상을 염려하기보다 세상이 종교를 염려하는 슬픈 상황이 나타납니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종교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편견과 오해가 있으며, 그로부터 분쟁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개선하고자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이웃 종교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종교 간 대화의 상대는 누구입니까?
“모든 피조물은 저와 비슷한 존재를 사랑하고 모든 인간은 제 이웃을 사랑한다.”(집회 13,15)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종교인, 곧 유다교·이슬람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민족 종교·도교·힌두교 등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종교 간 대화의 상대입니다.
이전에 가톨릭교회는 이들을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가톨릭 신자가 다른 종교인으로부터 비무슬림이나 비불교인 또는 비힌두교인 등으로 불린다면 어떤 느낌을 받겠습니까?
이러한 이유에서 가톨릭교회는 ‘비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그리스도교를 기준으로 이웃 종교인을 평가하는 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그리스도교’ 대신 ‘다른 종교’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부터 ‘이웃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웃으로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을 진정한 대화의 상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 간 대화를 하면 선교를 할 필요가 없습니까?
“비록 교회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진리를 반영하는 이슬람교·불교·힌두교의 종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참되고 거룩한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선포하여야 할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중략) 타 종교의 신봉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통상적인 수단들과 별개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고 그리스도께 구원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바라시는 신앙과 세례로의 초대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55항)
그리스도인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이웃 종교인을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인류 가족으로 인정하며,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웃 종교인들에게 복음을 알리는 동시에 이웃 종교가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 증진하는 일을 병행합니다. 이웃 종교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에 대한 체험을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앙과 삶을 증언하는 동시에 이웃 종교 안에 있는 참되고 귀한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며 촉진하고 발전시킵니다.
종교 간 대화는 이웃 종교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선교 활동을 배제하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