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한다면 미켈란젤로가 불과 23살에 제작한 ‘피에타상’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피에타(Pieta)’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경외’ ‘연민’ 등에서 유래했으며, 예수님께서 처형되신 후 십자가에서 내려져 성모님 품 안에 놓인 비통한 상황을 묘사한 조각이나 회화 작품을 일컫는다.
수많은 피에타 소재의 작품 중 단연코 최고의 걸작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 174×195㎝에 달하는 한 덩어리의 거대한 카라라산 대리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슬프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성모님 얼굴과 화려하고 풍성한 옷 주름, 특히 돌아가신 예수님의 리얼한 인체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좀 냉정하게 이 작품을 보면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성모님 얼굴은 성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기엔 너무 젊다. 동정녀는 늙지 않는다는 작가의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모님 무릎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성인 아들의 시신을 올리기에 여인의 일반적인 체형으로는 불가능하리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어색함을 풍성하고 현란한 옷 주름으로 가리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아우라로 인해 이러한 어색함조차도 오히려 균형감으로 인식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이 피에타상은 현재 두꺼운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는데, 2025년 희년을 맞아 잘 보이면서도 안전성이 보강된 새 방탄유리로 교체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피에타상이 방탄유리에 갇히게 된 것은 1972년 있었던 습격 때문이다. 헝가리 태생 호주 국적의 지질학자인 라스즐로 토트(Laszlo Toth)라는 사람이 난입해 “나는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예수다”라고 외치며 망치로 성모님 얼굴과 팔을 15차례 가격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성모님의 코와 눈두덩이가 파손되었고, 특히 왼쪽 팔은 아예 분리되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이 무려 1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고 직후 바티칸에서는 이 작품의 복원과 향후 보존방안이 논의되었다. 방탄유리로 작품을 보호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나, 복원 방안은 이견이 있었다. 일단 파편들을 접합하되 복원한 부분은 보이도록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는 당시 태동한 보존윤리에 입각한 복원이론이었으나, 결국 교황청은 복원 부위를 분간할 수 없게 처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5개월간의 복원기간 접착제를 이용하여 파편들을 접합하고 손실된 부분은 카라라 대리석 가루에 접착제를 섞어 채워넣었다. 사고 후 10개월이 지나 피에타가 제자리에 돌아왔고 그때부터 작품 앞에 방탄유리가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