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이며 사회활동가인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 앨런과 에릭이라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둘 다 장인 집안에서 태어나 수공예에 재주가 많은 소년이다. 두 사람에겐 수공예가 자아의식의 핵심요소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아 학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둘의 길은 매우 다르게 펼쳐진다. 앨런은 자아의식의 중요요소인 재능을 자신의 교직에 튼튼하게 짜 넣으면서 안정된 통합적 인격으로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에릭은 그렇지 못하다. 에릭은 시골에서 대도시 사립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순간부터 늘 자신이 가짜라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허풍을 떨며 호언장담을 일삼고 툭하면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비판적이고 단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에릭은 불안하고 분열된 인격으로 성장한다.
‘자기다움’은 자기동일성으로 드러난다. 내면의 자아와 드러나는 행동이 어느 정도 일치될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반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와 다르게 행동할 때 인지 부조화 현상으로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사람들을 만나 한바탕 웃고 떠들고 즐겁게 놀다가도 돌아서면 왠지 허전하고 공허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나답게 행동하지 않을 때가 아닐까 싶다.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이 가짜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타인을 의식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애쓴다. 불안하고 두려울 것이다. 태연한 척할수록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타자의 시선과 세상의 규정에 갇혀있기에 그렇다. 시골 장인의 집에서 자란 에릭의 성장기는 자신의 자아의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그런 ‘자기다움’의 핵심 요소를 타인의 시선에 의해 부정하는 순간,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S대학 학생들의 고민 1위가 ‘우울·불안·무기력’이라고 한다. 다른 대학도 취업이나 학업보다는 오히려 정서불안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 상담 관계자들은 말한다. 자신이 최고라 믿고 살아온 젊은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저는 남의 눈치를 심하게 봐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도 불안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저렇게 맞추다 보니 내가 없어진 것 같아요.” 최근 만난 한 대학생의 호소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다 보니 ‘자기다움’을 잃고 ‘가짜 자아’로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한 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외부의 기대에 맞춰 가상의 자아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적 기대와 압박을 피하기 위해 혹은 주변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맞추려다 보니 진짜 ‘나’를 잃게 되면서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시간과 공간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은 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성이며 아우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복제품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유일무이한 원본의 진정성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보다 무언가 더 가미된 복제를 즐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기다움’이라는 원본의 진정성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혹은 찾아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세상이 규정한 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면서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와 가상의 혼합현실에서 ‘자기다움’이라는 원본의 진정성을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원본 없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신하기도 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되어 현실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원본과 복제의 차이는 모호하다. 하지만 자기다움과 가짜 자아의 간극은 너무도 크고 깊다.
혹시 ‘자기다움’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있다면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길. 남과 비교하면서 남과 같아지려 하기보다 유일무이한 원본의 진정성으로 남과 달라지기를. 수험생이여,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겁먹지 말자. 오로지 나의 성적만으로 내가 선택하고 ‘나다움’의 진정성으로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는 모두 원본으로 태어났는데 왜 복사본으로 죽어가는지 모르겠다.”(에드워드 영) 하느님에게로부터 나온 진짜 ‘나’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합니다. 남처럼 유명해지고 싶고 잘나고 싶고 권력과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나다움’을 잃어가고 있고요. 집단 최면에 걸려 외부 시선에 갇혀 세상이 설정한 목표를 따라 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나는 정말 누구일까요? 시간이 흘러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나의 실체는 있는 걸까요? 나는 ‘나’이니까 남들과 다른 나만의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걸까요?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모습으로 ‘나’를 창조하셨음(창세기 1,27)을 잊지 않고, 세상을 일구고 돌보라는(창세기 2,15) 소중한 사명 안에서 우리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원본(original)으로 태어났으니 원본으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