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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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에 대한 물음과 대답

[저는 믿나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들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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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오로 사도 프레스코, 성 바오로 대성전, 로마.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9-10)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라고 가르칩니다.(로마 10,17)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느님의 계시를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홀로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하느님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들음’은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의 전례와 성사 그리고 교리교육 안에서 보호받고 보존되고 전승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기록된 복음서들과 독립적으로 주님의 말씀과 행적뿐 아니라 그의 모든 역사를 온전하게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도 시대에 점유된 것은 가르침과 설교의 토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교회의 신앙 고백의 기원뿐 아니라 스스로를 ‘기쁜 소식’의 한 표현으로 이해했던 기록된 복음서들의 원천을 이루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76쪽)

지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사도 신경을 통해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지만 아직 신약 성경 정경조차 선정되지 못했던 초대 교회 때에는 우선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신약 성경 또한 사도 시대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해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자들로 인해 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오고 있지요.

주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이끌던 초대 교회 때부터 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혼란을 겪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달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15)

그래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에 대해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이 알려주고 있듯이 사도 시대 초대 교회 구성원들은 세 부류였습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유다교를 믿다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 유다인이지만 팔레스티나 지역 밖에서 헬레니즘화된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 헬레니즘 문화에서 살아온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지요. 그들은 각기 구약 성경의 율법을 기반으로, 유다교 전통과 헬레니즘 사고를 융합한 문화를 배경으로,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에서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로’, ‘역사의 예수에서 신앙의 그리스도로’, 나아가 ‘사람의 아들(인성)에서 하느님의 아들(신성)로’ 넘어가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선포, 이에 대한 교회의 성찰인 교리 선포, 교회 공동체의 신앙 체험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진심으로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초대 교회 세 부류의 구성원들과 누구보다 친숙했고 네 번째 복음서를 쓴 요한 사도만큼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5-20)

바오로 사도는 또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사도들이 들려주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고백입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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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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