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7)
우리말 사전에 ‘갈팡질팡’이란 말은 순우리말로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자성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입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심리적 상태를 들여다보면 불안하기 때문이며, 윤리적 상태로 보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갈지 확실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책임 앞에서 스스로, 그리고 아무도 불안한 상태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이에 자신도 사회도 더 불안에 떨며 멍들어가게 됩니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일어나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극복되어집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백성을 보살필 책임을 짊어진 제나라 왕에게 맹자가 말합니다.
“왕의 신하가 벗에게 처자식을 맡기고 초나라에 갔습니다. 그가 돌아와 보니 처자식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왕이 말하길 “절교해야 하지요.”
다시 맹자가 말했습니다.
“만약 감옥에서 죄수 관리를 관장하는 관리가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이 말하길 “그를 면직시켜야 합니다.”
맹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은 좌우로 고개를 돌아보고 딴소리를 합니다.(왕고좌우이언타, 王顧左右而言他) 「맹자, 양혜왕 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나 몰라라 하는, 제나라 왕을 일깨우기 위해 맹자가 유도한 말입니다. 제나라 왕은 남의 허물은 잘 판단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일이 많습니다. 좌로 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할 때 주변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 갈팡질팡,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얼굴은 항상 ‘좌로 갔다’ ‘우로 갔다’ 역할분담하며 역사를 반복하지만, 딴소리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회가 진정 바라는 것은 좌와 우가 목적이 아니라 좌우가 화(和)해 길을 선택하고 책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입니다. 그것을 위해 남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자기방어가 아니라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책임감 있게 헌신해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진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상식적 진리보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여 얻은 진리가 참된 의미로 주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이 아닌 헌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주관적 진리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 그것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짐을 진 사람만이 참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과 세상의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책임을 미루고 우왕좌왕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불안에서 벗어나 미래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