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례력으로 새해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오시는 구세주이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대림 시기로 믿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교회의 시간 전례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한된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늘 찾아오시고 함께하신다는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분이시고 시간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현재이시기에 신앙인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분의 현존과 역사하심을 교감하고 통교(communio)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복음이 묘사하는 세상 종말은 예전에는 묵시문학적 표현으로만 받아들여졌는데, 요즘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자연재해 현상을 예언하는 말씀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오늘날 전 지구적인 과제로 떠오른 기상 이변과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은 자연 생태계의 위기와 파괴 현상을 보며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6)라는 주님의 질책을 마음에 새겨야 할 때가 아닌지요?
1980년대 말, 제가 구로공단에 인접한 구로1동본당에서 사목할 때 여러 공장에서 내뿜는 유해가스 등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했습니다. 구역장·반장 모임에서 주변 환경 대책을 논의하던 중 어느 반장님이 “화학 시간에 배운 리트머스 시험지의 원리를 이용하여 공장 주변의 대기오염 상태를 측정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따라 오랫동안 삼삼오오 짝지어 조사한 결과를 그래프로 그려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반장님들이 환경 위기의 주범은 공장에서 배출하는 유해 물질과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매연이라고 의견을 모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참으로 예언적인 통찰이었구나!’ 하고 경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날 지구 환경과 생태계 위기는 인류 공동의 집 관리인인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오만에서 기인한다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루카 21,34 참조) 에덴동산의 청지기인 아담(인간)의 일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창조 질서의 보존과 회복에 있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하느님 나라의 시민인 우리 신앙인들은 “늘 깨어 기도하여”(루카 21,36) 이 세상의 가치관과 사조에 오염되어 속화된 우리의 감성과 영혼을 주님의 영적인 감각과 정신으로 성화(聖化)함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의 도래를 위하여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