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할 때 즈음이면 그 어느 때보다 더 바쁘다는 느낌이 든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현대인 10명 중 8명은 “항상 바쁘다”라는 느낌으로 산다고 한다. 게다가 열심히 바쁘게 일하면서도 대부분 왜 바쁜지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숲길을 지나던 나그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나무를 자르는 나무꾼을 만난다. 톱이 무딜 대로 무뎌 있어 나무가 쉽게 잘리지 않는 사실을 알아챈 나그네는 “언제부터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느냐”고 나무꾼에게 묻는다. 나무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새벽부터”라고 답한다. 그러자 나그네는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넨다. “톱날을 갈면 더 쉽게 자를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무꾼은 버럭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한다. “당신은 내가 톱날이나 갈 만큼 그렇게 한가한 사람처럼 보여요?” 너무 바빠 톱날 갈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유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바쁘긴 한데 왜 바쁜지 모를 때가 있다. 무딘 톱날로 나무를 자르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지만 늘 바쁘다. 어쩌면 ‘바쁘다’는 꽉 찬 느낌이 습관이 되어 익숙해지면서 멈춰 톱날을 갈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지인 중에 직장생활이 고단하고 바빠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톡은 수시로 올리고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관리한다. 때론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각종 사진이나 동영상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슈와 스포츠·정치·연예인 정보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드는 의문이다. ‘정말 바빠서 바쁜 걸까?’ 아니면 그냥 바쁘다는 기분으로 사는 것이 익숙해진 것일까? 바빠서 조급해진 것이 아니라 조급함이 행동유형이 되고 ‘바쁨’이란 느낌을 장착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톱날 갈 시간을 찾으려면 한숨 쉬어가야 하고 손안의 도구를 내려놓고 정비를 해야 하고 때론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멈춤과 돌아감은 왠지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피로감과 분주함의 기분을 잊게 해주는 디지털기기에서 쉼의 시간을 보낸다. 잠깐이나마 지친 뇌를 쉬게 해주며 위로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얻어낸 쾌감은 더 큰 자극을 욕망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올라온다. 이는 쉽게 얻어낼 수 있는 파괴적인 즐거움이다. 여러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로감에 쌓인 뇌는 산만해지고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무딘 톱날처럼 열심히 일해도 능률은 오르지 않는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면서 ‘바쁘다’는 느낌만 잔뜩 끌어안고 불안감과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회 달력으로 새해다. 대림 시기 첫 주일부터 한 해의 전례주년이 시작된다. 한 해를 보내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 무엇에 집중하고 살았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일에 주로 마음을 쓰고 시간을 보냈는지 돌아본다. 시간의 발자취가 곧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왜 바쁜 느낌으로 사는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면서 집중하는 일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할 이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정하다.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억만장자라도 지나간 시간을 살 수 없고 일 초도 더 늘릴 수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정한 시간이라 하더라도 ‘시간 부자’로 살 수는 있다.
수도자들은 매월 하루 피정을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기도와 독서 그리고 ‘쉼’만으로 하루를 보낸다. 무엇보다 그날만큼은 디지털기기를 만지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시간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스마트폰 없는 하루는 마음속에 시간을 저축해 놓은 듯 여유가 찾아온다. 침묵 상태에서 거리를 나가면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은 슬로우 모션이나 정지된 사진처럼 찍혀 마음 시계를 멈춰 세운다. 독서나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은 꼼꼼하게 찬찬히 느슨하게 흘러간다. 한량처럼 보내는 하루는 그동안 바빠서 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아 바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영성이 묻는 안부>
“분주한 가운데 친절하고 온유한 사람은 완벽하다.”(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바쁜 일상 중에 친절하고 온유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완벽할 정도로 성인(聖人)에 가깝다는 건데요. 사실 바쁠 때 친절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쁘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때 감정의 뇌, 편도체가 위기상황으로 이해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이때 외부 상황을 해석하고 대비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고요. 그러면 자기통제가 어려워지고 화를 내거나 어떤 공격성을 보이게 되고 결국 후회할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쁘고 분주하다는 느낌이 영성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지만 매우 주관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똑같은 시간과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여유 있게 행동하고 친절하고 관대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인색하고 조급합니다. ‘바쁘다’는 느낌은 외부 시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시계에 있나 봅니다. ‘배속재생’으로 영상을 보면서 파괴적 즐거움에 빠지면 우리의 현실 시간도 엄청 빠른 속도로 재생되겠지요. ‘바쁘다’는 느낌은 무뎌진 톱날로 분주하게 살게 할 거고요. 하지만 기도나 독서는 심심하지만 고요하고 즐거운 마음의 여백의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바빠도 바쁘지 않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올 한 해와 이별하면서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