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바로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화가인데도 불구하고,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에 가려져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유로화 이전 리라화 지폐의 모델이 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다. 카라바조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일반인의 삶을 거리낌 없이 화폭에 등장시켰고, 탁월한 묘사로 각광 받았다. 특히 그가 그린 성화는 빛과 어둠의 극한 대비와 인물 배치 등으로 감상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생활은 거의 부랑자 수준이었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질러 도망 다니다 생을 마감했다.
1984년 몰타의 세인트 존스 대성당에서 카라바조의 ‘성 예로니모’를 도난당했다.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살인죄로 도망 다니다 몰타로 피신했을 때 그린 성화 중 하나다. 당시 두 명의 강도는 유유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작업중’이라는 입간판을 놓고 예리한 칼로 작품의 가장자리를 잘라 낸 후 둘둘 말아 창문 밖으로 던졌고, 공범이 이를 받아 도주했다. 범인들은 지문이나 족적 등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아 수사는 난항을 겪었는데, 2년 만에 범인들이 검거되고 작품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되찾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도난 당시 몰타 국립박물관의 관장이었던 자라파(Marius Zarafa) 신부였다. 아마도 해외에 작품을 파는 것이 어렵자 도둑들이 반환을 대가로 몰타 정부와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신부와 도둑들은 통화 등을 통해 접촉하게 되었고, 신부의 기지로 이들을 일망타진하고 작품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 2년 동안 말려 있던 작품은 세로 방향으로 심한 균열과 박락현상이 발생하여 로마의 공방에서 평면화 작업과 더불어 접착제를 이용한 안정화 처리 등 복원 작업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미술품을 훔치려는 것일까? 유명 작가의 작품은 수천억 원에 달하지만, 부피도 크지 않고 늘 관람객에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카르바조의 사례처럼 잘 알려진 작품의 경우 어렵사리 훔친다고 해도 실상 처분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도난당한 작품을 사는 순간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터폴은 도난당한 미술품의 암거래가 마약과 무기 거래 다음으로 큰 시장이며, 거래 금액도 연간 15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미술품 도난 사건은 인간의 돈에 대한 욕심과 그릇된 소유욕이 혼재된 복잡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