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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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7) 기다림의 끝, 예수라는 영원한 계약

[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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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장난감 가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잠시 어디 다녀올테니 이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는 말씀을 하시고 어딘가를 다녀오셨던 적이 있다.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그 자리에 가만히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머니와 나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극적으로 다시 만나야 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만났던 그 순간, 어머니에게 보여지던 복잡 미묘하고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의 떨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는 어린 나에게 있어서 약속이 지닌 커다란 무게감을 체험했던 첫 기억이었던 것 같다.

성경의 하느님은 약속의 하느님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약속이 아닌,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인간은 그저 그것을 믿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 쉬운 걸 못하겠다고? 사실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 약속의 실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급하고 초조한 인간에게 있어서 사실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그 약속의 실현을 언제까지 믿으란 말인가? 

흥미로운 점은 성경에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섭리에 대한 약속은 자주 묘사되고 있지만, 그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계약’이라는 용어는 매우 드물게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 짧은 지면에 계약이라는 용어의 어원적인 의미와 특징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에서 약속의 하느님이라는 두드러진 모습에 비해 그 약속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계약’이라는 어휘가 드물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인간이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약속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야기 안에서 계약이라는 말은 15장 18절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계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전후의 문맥은 다음과 같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3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 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위의 본문은 하느님의 약속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대목일 수 있는데, 어째서 하느님은 계약을 맺기 전에 악이 차기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을 하시는가? 조금 난해할 수도 있지만 성경 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표현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시간을 열어놓으시고 초대하시어 그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도전하며 노력할 수 있도록 기다리신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기다리신 후, 인간이 자신의 삶과 주변을 더 이상 지켜 나갈 수 없고 그것이 확실시되었을 때, 하느님은 결정적인 방식으로 개입하신다. 성경에서 ‘마지막 때’, ‘때가 다 찼을 때’라는 표현은 마지막 시점까지 허락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점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 급히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체험과 지혜의 결과물인 듯 여겨진다. 그분은 시간을 두고 바라 보시며, 그 어떤 일련의 일들이 진정으로 무너지거나 파괴되기 직전에 개입하신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타락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구하신다. 이 안에는 인간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선 그러한 신뢰적인  소통 안에서 계약이라는 약속이 체결된다.

어머니와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다행히도(?) 서로 간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 오셨을 것이다.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믿고 기다리셨던 것처럼, 이번 대림에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예수라는 영원한 계약을 만나기를 희망해본다.

* 그동안 꿈(CUM)과 함께해 주신 오경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에서 성서 고고학 디플롬(diploma superiore)을 이수했다. 춘천교구 묵호, 퇴계 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현재 교구장 비서 및 교구 성경 사목 담당 소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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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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