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화가 장발(루도비코, 1901~2001)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의 그림이 매우 익숙하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제대 후면을 장식하고 있는 14사도, 성 김대건 신부의 상본, 신앙을 증거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우리 성인들의 초상 등 알게 모르게 우리 뇌리에 그의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화가이고, 서울대 미대 초대 학장을 지낸 그는 깊은 신앙심으로 성미술을 제작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복원가로서 장발 화백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성화가 아닌 정물화였다. 당시 근무하던 미술관에 유족 한 분이 장발 선생의 작품이라며 유화 한 점을 기증하였다. 작품에 작가의 서명도 없고 성화도 아니라서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유일한 단서는 작품 후면에 ‘L.C.’라는 영문자와 장발을 추측할 수 있는 ‘CHANG’이라는 글자뿐이었다. ‘L.C.’의 경우 장발 선생의 세례명인 ‘루도비코’의 약자였을 텐데, 당시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특히 글자들이 분필로 적혀 있어 후에 누군가가 써넣었을 개연성이 있었다.
이후 작품에 대한 엑스선 촬영에서 신기한 모습이 나타났다. 정물화 밑에 최소 두 개의 인물화가 있었다. 하나는 양장을 한 여인, 다른 하나는 한복을 입은 단아한 여인의 정면 모습이었다. 유족에게 보여드렸더니, 단번에 자신의 시어머니 모습이라고 답했다. 장발 선생이 시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고 말해 그의 작품이라는 근거가 추가되었다.
이렇듯 엑스선 조사만으로도 작품에 숨겨진 사실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있는 인상파 화가 바질(Bazille)의 ‘꽁다민가의 아뜰리에’를 엑스선으로 보면 그림 밑에 여인의 누드가 나타나는데, 그 그림은 르누아르가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유하고 인성이 좋은 바질의 아뜰리에를 사용하기도 했던 르누아르가 한편에 미뤄뒀던 작품을 바질이 재활용한 셈이다. 또 렘브란트의 ‘젊은이의 초상’ 엑스선 사진상에는 요람에 아기를 재우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있어 이목을 끌었다.
엑스선은 작품의 진위 판단에도 사용된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의 소장품인 ‘에드워드 6세의 초상화’ 엑스선 상에는 웬 여자아이의 초상이 나온다. 수정했거나 재활용했다는 가정을 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 아이의 복식이 당시에는 나올 수 없는 17세기 의상이라 위작으로 판명됐다.
엑스선 촬영의 가장 일반적 용도는 작품 상태를 조사하고 지지체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인데, 대중은 회화 밑에 숨은 화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엑스선 이미지에 나타난 필치가 마치 지문처럼 작가 고유의 기법을 보여주기 때문에 작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