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개신교 목사님이 만드시고 천주교 생활성가로도 불리고 심지어 야구 응원가로도 쓰이는 ‘실로암’이라는 성가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열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노래하는 사람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필리피서 그리스도 찬가(필리 2,6-11)는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기도이고, 전례 중 공동체가 함께 부르던 성가였습니다.
1절: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6-8)
2절: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 2,9-11)
가장 오래된 기도인 그리스도 찬가
인간 모습으로 태어난 그리스도
스스로 낮추며 높아지는 모습 담겨
찬가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느님 곁에 계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순종하시면서 종살이와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에 동참하시기 위해 당신이 지니셨던 신성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이라는 자기 낮춤의 밑바닥에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우주의 모든 권능을 위로 높이 올리십니다. 왕좌에 오르는 임금처럼 그분의 이름이 선포되고 모든 이가 그분을 경배하는 가운데 그분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이사 45,23-24)는 예언서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홀로 높으심을 강조했습니다. “나 주님(야훼)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이사 45,21)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예수님을 유일하신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선포하며 유다교의 하느님 상을 확장합니다. 하느님은 저 높은 하늘에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아드님을 통해 세상에 내려오시고, 누구보다도 저 삶의 밑바닥에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인간과 완전히 다르신 분이시지만 아드님을 통해 인간 곁에 오시며 인간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셨습니다. 당장 망할 것 같은 세상과 이 순간이 예수님을 통해 해방되고 중심을 잡고 목적을 얻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심오한 그리스도론을 이용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 2,3-4) 믿는 이들과 교회 공동체가 자기 자신에 사로잡혀 자신 주위만을 맴맴 돌며 다른 이들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이기심과 선입견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비우고 겸손해져 다른 이들을 섬기기를 권고합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돌보는 이는 예수님과 함께 들어 높여질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자꾸 넘어지는 우리는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셨다가 현양 된 예수님과 함께 다시 일어설 힘을 청하며 함께 노래합니다.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글_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