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구 풍양 농촌 선교본당, 절임배추 판매로 본당 재정 마련
풍양 농촌 선교본당 교우들이 본당 예산 마련을 위해 텃밭에서 키운 배추를 절이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령화로 힘에 부치지만 명절 같은 분위기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신부님, 저기 물동이 좀 옮겨줘요. 여기서 유일한 청년인데 힘 좀 쓰셔야지!”
본당 신자들의 아들·손자뻘 나이인 본당 주임 신부가 시골 본당에서 절임 배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안동교구 풍양 농촌 선교본당(주임 김유강 신부)은 3~4일 배추를 절이고 포장하는 작업에 본당 온 식구가 달라붙었다.
교우들은 매년 추위가 찾아오는 이맘 때면 성당 텃밭에서 오랫동안 정성스레 키운 배추를 뽑고 절여 자매결연한 도시 본당과 시설에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신자 수 50명 남짓한 본당의 가장 큰 1년 예산이 된다. 본당 재정 마련을 위해 10여 년 전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올해 절임배추는 20㎏씩 230박스가 나왔다. 무려 4톤이 넘는 양이다. 그나마 올여름 무더위 탓에 작년의 3분의 2 수준이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신자 대부분이 농부인 ‘농촌 선교본당’이다. 가톨릭농민회 이념으로 땅을 일구고 있다. 본당 배추에도 풀약을 치지 않고 저농약 농법으로 수확한다. 소금은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 직접 가서 가져온다. 광주대교구 신의본당 신자들이 풍양본당을 위해 비를 맞지 않고 깨끗한 해류를 받아 미네랄 함량이 많은 소금을 엄선해뒀다.
본당 신자들은 양질의 배추를 직접 재배하며 이를 통해 본당 재정을 위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따라주지 않는 몸이 야속하기만 하다. 본당에서 가장 젊은 층이 60대. 88세 어르신도 배추 작업에 임한다.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기약 없는 작업이지만 본당 일이기에 너도나도 팔을 걷어붙인다.
배추 작업은 위기에 놓인 시골 본당의 단면을 보여준다. 낯선 사람마저 그리울 만큼 사람이 없다. 본당은 2008년 공소에서 농촌 선교본당으로 승격·신설됐지만, 언제 다시 공소로 전환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본당 주임 김유강 신부는 “신자는 물론 교구 사제도 고령화돼 가는 상황을 보면, 희망을 얘기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지금껏 본당을 이끌어 온 교우들이 있는 한 이 마을에서 신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본당 신자 대부분은 대대로 신앙을 물려받았다. 안동교구 역사에 ‘1866년 상주·함창·문경·예천·예안·봉화·의성 등에 공소 조성되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풍양과 인접한 곳들이다. 최규택(치릴로) 본당 회장은 “1926년 당시 이곳 근처 산골짜기 교우촌에 주교님이 오셔서 성사를 베푸셨는데, 그때 400명이 왔다는 기록이 있다”며 “풍양의 교우촌 형성 시기를 180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자들은 “부모·조부모 모두 신자였다”면서 “언제부터 신앙이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그저 윗대에서 보고 배운 대로 신앙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신앙 안에서 평생 함께 살아온 이들은 말 그대로 가족이다. 최미경(헬레나) 성모회장은 “이집저집 사정 다 알고, 필요하면 도와주면서 한집 식구처럼 살고 있다”며 “오는 사람은 없고 가시는 분만 있어 안타깝지만, 오늘 배추 작업처럼 함께 모여 웃고 일할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작업에 함께한 양우석(작은형제회) 신부는 “풍양 교우들은 젊은이들이 대신해줄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몸담는 마지막 날까지 나의 일이라 여기고 있다”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아들 앞에 깨어 머물고자 하는 자세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 노령화에 대해 여러 우려를 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정성 어린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교회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